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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옵소서.”만이 아니라 “선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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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1건 조회 9회 작성일 26-05-2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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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옵소서.”만이 아니라 선포하라

주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말과 행동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자녀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힘들면 하나님께만 부탁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믿는 자들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여기서 권세는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헬라어로는 엑수시아(ἐξουσία)”인데, 합법적인 통치권, 사용 권한, 위임된 권세를 의미합니다.

,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하늘의 권세를 위임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쫓아 주세요? 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귀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5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마가복음 5:8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님은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하나님 아버지여 귀신 좀 쫓아 주세요.”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입니까? 이미 권세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권세를 제자들에게도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명령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도해 보아라.가 아니라, 실제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2. 믿는 자들에겐 표적이 따릅니다.

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쫓아내며입니다. , 믿는 자는 두려워 도망만 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선포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3: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는 하나님, 이 사람을 고쳐 주시옵소서.만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받은 권세 안에서 선포했습니다. “일어나 걸으라.” 이것이 믿음의 실행입니다.

왜 많은 성도들은 늘 해 주세요만 할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자신 안에 계신 성령을 잘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요한일서 4:4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밖에서만 하나님을 찾습니다.하지만 성령께서는 믿는 자 안에 거하십니다.

2> 영적 전쟁을 너무 수동적으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야고보서 4: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여기서 대적하라는 능동적인 표현입니다.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맞서는 것입니다.

3> 책임지기 싫어하는 인간 본성 때문입니다.

제 안에 음란 마귀가 있나 봐요. 쫓아 주세요.”, “아버지 저는 못하겠으니 저 사람이 변화되게 해 주세요.”, “오늘도 죄를 또 지었네요. 죄에서 벗어나게 도와 주세요.”

사실 해 주세요는 편합니다. 하지만 내가 예수 이름으로 끊어낸다” “내가 죄를 거절한다.” “내가 사단을 대적한다.” 이것은 책임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신자를 영적 어린아이로만 두지 않습니다. 군사로 부르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균형도 있습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성경은 단순한 인간의 자기암시나 무조건적인 긍정 선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식 끌어당김의 법칙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자기 힘으로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권세 안에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5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교만한 자기 선언이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는 믿음의 선포입니다.

기도와 선포는 함께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성령 충만, 지혜, 긍휼, 회개, 인도하심, 믿음 이것은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적해야 할 것은 대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음란, 두려움, 사단의 공격, 절망, 거짓, 중독 이것들은 예수 이름으로 거절하고 끊어내며 대적해야 합니다.

 

3. 믿음은 입술로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믿습니다.”라고만 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실제로 일어나 걷게 하셨고, 귀신을 대적하게 하셨고,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은 머리 지식이 아니라 실행되는 권세입니다.

말씀과 기도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과 인내가 필요하고 그 말씀을 지킬 만한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아무도 자기 자녀를 온실에 키우고 싶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계획을 안다면 말입니다. 쉽게 좋은 것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찾는 사랑의 노력도, 구하는 소망의 마음도, 두들기는 영적인 믿음도 모두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나타납니다,

 

적용. 그래서 성도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음란함을 없애 주세요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음란의 영은 떠나갈지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거룩함으로 살겠다.”

두려움 없애 주세요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다.”

마귀가 자꾸 괴롭혀요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결론. 예수님은 믿는 자를 늘 무기력하게 도움만 요청하는 존재로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성령 안에서 권세를 가진 자녀, 대적하는 군사, 빛을 선포하는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단지 주님 해주세요.”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내게 주신 권세로 나는 믿음 안에서 선포하고 순종하겠습니다.” 여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권세의 중심에는 내 자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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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님의 댓글

강수인 작성일

스게와의 일곱 아들 사건
본문: 사도행전 19: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성경에는 실제로 “권세 없이 함부로 영적 세계를 건드렸다가 오히려 당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선포만 하면 된다.”가 아니라, 그 선포 뒤에 반드시 성령의 임재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실제 관계가 있어야 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사도행전 19장의 “스게와의 일곱 아들” 사건입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은 바울이 귀신을 쫓는 모습을 보고 흉내 낸 것입니다. 겉으로는 비슷했습니다. 예수 이름 사용: 선포함, 명령함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들 안에 성령의 실제 권세가 없었습니다. 악귀의 충격적인 대답 사도행전 19: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이 장면은 영적 세계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귀신은 단순히 “말”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진짜 성령의 임재, 진짜 예수와의 관계, 진짜 권세 이것을 압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사도행전 19: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오히려 귀신을 쫓으려다가 귀신 들린 사람에게 제압당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경고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1.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 즉, “내 주님”이 아니라 “남의 예수”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간증, 남의 능력, 남의 기름부음만 따라가면 위험합니다.
영적 권세는 흉내로 생기지 않습니다.

2. 성령의 임재보다 기술을 따라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식”은 따라 했지만, 성령의 충만함은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위험한 것이 이것입니다. 큰 소리, 과장된 선포, 분위기, 흥분 이것이 성령 충만은 아닙니다.
성경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예수님도 먼저 성령 충만하셨습니다. 예수님조차 공생애 전에 먼저 성령 충만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1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그리고 시험을 이기신 후 사역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성령 받기 전에는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장 나가서 싸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49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그리고 오순절에,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담대함과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중요한 핵심: “선포” 자체가 능력이 아니라? 능력은 성령께 속한 것입니다.
말만 따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순서!
1단계 — 회개와 거룩.
야고보서 4:7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먼저 하나님께 복종입니다.

2단계 — 성령 충만.
에베소서 5:18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3단계 — 그 다음 대적.
야고보서 4: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순서가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종 없이 대적만 하려 합니다. 왜 성령의 임재가 중요한가?
왜냐하면 귀신은 인간의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성령의 임재, 십자가의 능력, 거룩함, 순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9:29 “이런 종류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나갈 수 없느니라.”
어떤 사본에는 “금식”도 포함됩니다.
즉, 영적 전쟁은 단순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연결이라는 것입니다.

◆ 오늘날 교회가 조심해야 할 것은? 성령 충만보다 “귀신 쫓는 흉내”만 배우면 위험합니다.
교만, 과시, 흥분, 자기 의, 이런 상태에서 영적 전쟁을 하면 오히려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진짜 권세 있는 사람의 특징: 바울이나 예수님을 보면 막 소리 지르며 과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낮아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권세는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결론
성경은 분명히 믿는 자에게 권세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권세는 인간의 혈기나 공식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실제 관계, 성령 충만, 거룩함, 순종, 십자가의 삶 안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귀신을 쫓는 기술”이 아니라, “성령께 붙들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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