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사랑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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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를 사랑하십니까?" 본문: 로마서 5:8, 요한복음 13:34-35.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서론 : 사람들은 특별함을 사랑하게 됩니다. (행위와 보암직한 것을 기준으로 봄)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공부를 잘하면 존경합니다. 돈을 많이 벌면 인정합니다. 운동을 잘하면 박수를 보냅니다. 노래를 잘하면 감탄합니다.
즉 대부분의 사랑과 존경은 이유가 있습니다. 잘하니까. 멋있으니까. 필요하니까. 유익하니까.
그래서 세상의 사랑은 대부분 조건적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알게 됩니다. 성공했을 때 주변에 사람이 많습니다. 잘 나갈 때 친구가 많습니다. 건강할 때 관심 받습니다. 돈이 있을 때 찾아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실패하면 어떻습니까? 병들면 어떻습니까? 실수하면 어떻습니까? 그때 진짜 사랑이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려 합니다. "도대체 누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가?"
1. 사람들은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사랑은 대부분 가치 중심입니다. 외모. 능력. 돈. 명예. 성공. 인간은 가치가 보이면 사랑합니다. 그러나 가치가 사라지면 사랑도 흔들립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눅 15:13-16) 재산이 있을 때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모두 떠났습니다. 세상의 사랑은 종종 계산적입니다. ◆현대 예화 유명 스포츠 스타가 우승할 때는 수많은 팬들이 응원합니다. 그러나 성적이 떨어지면 비난이 시작됩니다. 인터넷 댓글도 바뀝니다. 칭찬하던 사람이 욕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성공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를 사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은 가치가 없을 때 사랑하셨습니다. 즉 가치가 아닌 존재인 영혼을 사랑하는 사랑 중심
성경은 놀라운 사실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죄인이었습니다. 거룩하지 않았습니다. 충성되지 않았습니다. 사랑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곧 배신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은 삼십에 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만찬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십자가 아래 사람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죽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눅 23:34)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세상은 가치가 있으니 사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하시기에 가치를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3. 왜 예수님은 그렇게 사랑하셨는가? 우리는 자꾸 질문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해서 사랑받을까?" 그러나 성경은 다른 답을 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 4:8) 사랑은 하나님이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태양이 빛을 내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불이 뜨거운 것처럼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누를 보세요.
4. 예수님 말고 누가 나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 배우자. 자녀. 영적 스승. 믿음의 동역자. 그런데 아무리 좋은 사람도 한계가 있습니다. 실망할 수 있습니다.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떠날 수 있습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은 귀하지만 완전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 영원.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기에 너를 이끌었다." (렘 31:3)
예화: 어느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감옥에 갔습니다. 모든 사람이 포기했습니다. 친척도 포기했습니다. 친구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매주 면회를 갔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왜 아직도 저 아들을 사랑합니까?"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저 아이가 죄인이기 전에 내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5. 나는 누구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가?
사실 인간은 스스로 그런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계산합니다. 우리도 상처받습니다. 우리도 실망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잘 보십시오. 사랑하라는 명령보다 먼저 사랑받는 은혜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원수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배신한 사람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용서받은 사람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차이를 봅니다.
◆세상은 특별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함으로 특별하게 만드십니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사람을 일으키십니다.
세상은 가치 있는 사람을 선택합니다. 예수님은 가치 없는 자에게 가치를 부여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이토록 사랑받고 있는데 나는 그 사랑을 알고 있는가?" 입니다.
●적용 질문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격으로 얻으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가? 내가 아직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사람의 인정으로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고 있는가? 이제 중심으로 들어갑니다.
●마음의 생각을 혼의 생각으로 바꾸고 육신을 초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오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을 너무 쉽게 "피해자의 자리" 에 놓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 상처받은 사람도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성경은 우리를 먼저 피해자가 아니라 죄인으로 진단합니다.
성도들은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기도를 안 했으니까 하나님이 날 싫어하실 거야."
"내가 또 넘어졌으니까 하나님이 실망하셨을 거야." "내가 말씀대로 못 살았으니까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셨을 거야."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생각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내가 잘했으니까 사랑받고." "내가 못했으니까 버림받고."
◆결국 하나님의 사랑도 자기 행위의 결과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의 관점이 아니라 거래의 관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탕자가 집을 나가 아버지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그가 돌아올 때 무엇을 준비합니까? "나는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품꾼의 하나로 써 주십시오." (눅 15:18-19) 탕자는 스스로 죄인의 자리, 가해자의 자리를 인정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낭비했고 아버지의 마음을 찢어 놓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환경 탓도 하지 않았습니다. 형 탓도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 탓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버지가 그보다 먼저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담을 보십시오. 죄를 짓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창 3:12) 결국 하나님 때문이고 하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와는 또 뱀 때문이라고 합니다. 죄인은 자기 죄를 인정하기보다 피해자의 자리에 서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가해자의 자리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주님, 제 안에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고백이 시작될 때 은혜가 시작됩니다. 사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바리새인의 비유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피해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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