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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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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6-07-10 01:25

본문

1.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



아브라함의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유대인들이 배우고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을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련이 와도, 시험이 와도, 끝내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유대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너는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말씀이었습니다(창세기 12:1). 하나님과 동행은 떠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과거부터 가장 소중히 붙들고 있던 것, 내가 의지하던 우상, 세상의 중독, 내 자존심과 교만, 내 의와 내 생각을 내려놓지 않은 채 "주님과 동행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참된 동행이 아닙니다.

●베드로도 먼저 그물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물을 붙든 채 주님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누가복음 5:11).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내 짐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내 부귀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내 성격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내 의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내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내 의지함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주님과의 동행이 시작됩니다.

시험이 없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넘어져도 다시 주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서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떠나지 못하면, 처음부터 내려놓지 못하면, 처음부터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믿음의 여정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먼저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왕의 자리에 앉아 있던 삶에서 내려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비로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내가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내가 네 길을 인도하겠다."

믿음은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떠나는 것이고, 내려놓는 것이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길 끝에서 우리는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본문: 마태복음 6: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라는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며 살고 있습니까?

입으로는 "아멘" 하지만 실제 삶은 여전히 내 나라를 먼저 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자존심, 내 계획, 내 성공, 내 재산, 내 자녀, 내 건강, 내 명예…. 기도도 결국 이것들을 위한 기도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1. 하나님과의 진정한 동행은 '떠남'에서 시작됩니다.

창세기 12:1 "너는 너의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겠다."라고 먼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떠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떠남이 없는 축복은 없습니다. 순종이 없는 약속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떠나면 복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본토는 무엇입니까?

본토는 주소가 아니죠? 내가 가장 편안하게 살아오던 삶입니다. 친척은 무엇이죠? 내 인간관계입니다. 아비 집은 무엇입니까? 내가 의지하던 세상입니다. 오늘날의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은?  돈일 수도 있습니다. 명예일 수도 있습니다. 자존심일 수도 있습니다. 고집일 수도 있습니다.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 중독일 수도 있습니다. 스마트 폰일 수도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붙든 채 "주님과 동행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손이 아니라 마음을 보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다닙니다. 봉사도 합니다. 헌금도 합니다.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마음속에는 아직도 내가 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용하시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왕은 둘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왕이든 하나님이 왕이든 둘 중 하나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죽이는 곳입니다.  무엇을 죽입니까? 내 의입니다. 내 교만입니다. 내 욕심입니다. 내 혈기입니다. 내 자랑입니다. 내 계획입니다. 내 염려입니다. 내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20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신앙은 예수님을 내 삶에 모셔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3. 베드로는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누가복음 5:11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은 "그물을 들고 따라오너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물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사람은 손에 쥔만큼만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이 세상으로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을 붙잡을 공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시험을 허락하십니까?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돈을 붙잡고 있으면 돈 때문에 흔들립니다. 사람을 붙잡고 있으면 사람 때문에 흔들립니다. 명예를 붙잡고 있으면 명예 때문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붙잡고 있으면 흔들려도 다시 일어섭니다.


4.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면 '더하여' 주십니다. 순서를 바꾸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더하여 주시면 먼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을 구하면 더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히 11장은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 부릅니다. 왜입니까?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떠났기 때문입니다. 실수도 했습니다.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거짓말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적용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무엇을 아직도 붙들고 있느냐?" 혹시 내 자존심입니까? 내 상처입니까? 내 욕심입니까? 내 계획입니까? 내 성공입니까? 내 중독입니까? 아니면 내가 만든 신앙입니까? 여러분 보다 작은 것을 우상으로 삼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벗어나 주님을 슬프게 하는 그것이 죄입니다. 오늘 그것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결론. 믿음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많이 가진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나를 떠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내려놓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장 좋은 때에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아브라함처럼 떠나고, 베드로처럼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성도의 행복은 현실이 좋아져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을 행복하게 만든 것은 이삭이 아니라, 먼저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이삭은 그 약속이 이루어진 열매였습니다."



* 2. 하나님의 부르심은 꿈이 있는 사람에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공기업이나 대 기업에 특채로 누군가를 뽑아야 하는데 열심히 공부는 하는데 잘 안되었던 사람이 있는데 기업의 회장이 꼭 집어서 나를 지명해 준다면? 큰 기쁨이 생기게 되겠지요? 또 하나는 너무 힘들게 가수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몇 년 동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 수업과 자신이 원하는 춤을 연습하고, 노래를 연습하며 흘린 땀과 눈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명한 기획사의 대표가 말합니다.

"내년에 너를 데뷔시켜 주겠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있을까요? 왜 기쁜 것입니까?

그 아이의 마음속에는 이미 꿈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기업과 관심 없고, 가수가 될 마음도 없고, 연습할 의지도 없고, 노력할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나를 뽑아 준다는 말이나? 내년에 데뷔시켜 주겠다."라고 말하면 어떻겠습니까?

감동도 없고, 설렘도 없고, 오히려 "관심 없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입니까?

마음이 이미 다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그 부르심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왜입니까?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감격이 없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전도하십시오." "헌신하십시오." "십자가를 지십시오." 

이 말씀이 부담으로만 들립니다. 왜 그럴까요? 아직 마음이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더 좋고, 세상이 더 편하고, 세상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예수님도 먼저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충성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내어드리셨고, 십자가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고, 결국 자신들도 십자가를 지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사람은 말보다 삶을 따라갑니다. 믿음은 외침보다 순종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먼저 버려야 합니다. 옛사람을 버려야 합니다. 죄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을 의지하던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내 의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닙니다. 광야는 하나님만 남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고,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셨으며, 다윗을 왕으로 준비시키셨고,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떠납시다. 먼저 내려놓읍시다. 먼저 순종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붙드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설레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작아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아직 다른 꿈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것도 아니라면? 그냥 무익하고 무료하게 살 만큼 소망을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고 소망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은 약속이고, 신약도 약속입니다. 약속은 간절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소망입니다.

삶의 현장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바뀌고, 맹목적으로 살고 일하던 꿈이 없던 사람이 삶의 이유와 소망이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영원하시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오늘 여러분에게 믿기만 하면 주어지는 그 약속을 받고 살게 된다면? 하나님이 나를 고치시고 변화 시키셔서 그 자리에 앉혀 주실 것이라는 것이 즉 이보다 큰 소망이 있습니까? 

오늘 성경에 믿음의 선배들에게 함께 하신 그 약속을 나에게도 주셨고 주께서 나를 이끄실 것을 믿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나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심을 구하시길 바라며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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