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인정받는 삶. 마 6:25~34 (사순절 제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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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인정받는 삶. 마 6:25~34 (사순절 제 4주) 찬송: 28. 545. 342, 235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수요일이기에 사순절 4주간의 시작입니다.
*예배의 부름* (시 37:4~8)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주님께 인정받는 삶」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던 갈릴리지방은 가난한 사람이 무척 많은 곳이었습니다. 농토가 비교적 비옥했지만 대부분의 땅이 유다 지방의 지주들 소유였기 때문에 소작을 하거나 고기를 잡아서 먹고사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은 먹고 마시며 사는 문제에 몰두해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마 4: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고,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지만, (요 6:26)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국보다 먹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중에 금식을 해보신 분이 계시겠지만 한 사흘정도 먹지 않으면 정말 배가 고파서 기도마저 잘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을 줄 압니다. 사단도 (마 4:3)예수님을 시험할 때 제일 먼저 먹을 것을 가지고 유혹했던 것을 보면 먹고사는 문제가 인생의 중대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자세를 갖기 원하십니다. 이제 본문을 통해 쉽고도 어려운 주님께 인정받는 성도의 삶의 태도는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첫째, 인생의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소망과 문제는 비례>
본문 25절 말씀대로 인간들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데 인생 대부분의 시간들을 소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비관 주의자들은 사람은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허망하게 죽고 마는 짐승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먹고 사는 문제에 얽매여 근심과 염려 중에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모든 삶의 문제들을 (빌 4:6) 말씀처럼 믿음을 가지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어 주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체험적 삶을 살기를 기뻐하십니다. 또한 (벧전 5: 7) 우리가 모든 삶의 짐들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 모든 삶의 염려를 주께 맡김으로 주님과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시작과 결과를 알면 중심이 잡혀지게 됩니다. 시작은 무엇입니까? 죄인입니다. 끝은 무엇입니까? 은혜입니다.>
● 둘째,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억지로 안 됨. 사랑하면 됨>
*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몇 가지 공통 관심을 갖고 있는데, 예를 들면 재물욕이나 명예욕, 그리고 식욕이나 성욕 등이 그것입니다. 정말 이들은 이러한 것들을 위해 거의 자기가 가진 수명의 일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성령으로 인한 중생의 체험이 없기 때문에 영생의 소망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듯 썩어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애착을 느끼지 못하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이 없는 자의 생각은 항상 허무하다고 시편 기자는 담대히 증거 했던 것이다. (시 94:11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그 관심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명예나 쾌락을 추구하기 보단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 하고 궁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 마음 대로 하면 됐습니다만, 이제는 사사건건 신경이 쓰이더니 급기야 마음이 쓰이는 단계가 됩니다.
● 80이 된 모세는 이제 자신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팡이 하나 갖고 애굽으로 건너가 40세의 청춘에 이루지 못한 이스라엘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바로 왕과 싸워서 3백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까지 이끈 이스라엘의 위대한 종교가요, 정치적인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나이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속에 꿈과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꿈과 희망이 없으면 젊어도 퇴화합니다. 삶의 능력은 여기서 생기는 것입니다.
육신의 연령이 결코 [인생의 연령]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감사와 찬양과 원망과 불평은 신앙의 길과 불신앙의 길을 갈라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고 앞길이 칠흑 같을지라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인간의 운명과 환경을 좌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나아가면 마음속에 신앙이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으십니까? 보아야 믿는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는 중심을 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믿는 자!
● <* (참고: 고전 7:32~34) 이렇듯 믿는 자들의 최고의 관심은 항상 하나님께 두고 살며 그분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상대방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여 자연스럽게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소망을 두며 생활하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출 1:7> <출 1:7~9><역대상 21:5> 요압이 백성의 수의 총계를 다윗에게 주었는데 이스라엘 중에서 칼을 뺀 자가 모두 백십만 명이요, 유다는 칼을 뺀 자가 사십칠만 명이었더라.>
● 셋째,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상대가 주인공이 됨>
흔히 사람들은 자신과 직결된 일을 일생의 급선무로 여겨 그 일에만 몰두합니다. 예를 들자면? 나를 인정해 주는 세상과 나를 무시하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의를 부리다가 잘되면 자랑하고 안 되면 좌절하며 연민에 빠져 길을 헤매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적인 삶의 원리와는 다르게 본문에서 주님은 하늘나라 삶의 원리를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을 우리 삶의 시간과 전 생의 우선순위에 둘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은 그 외에 모든 우리의 삶의 필요를 채우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러한 삶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영역에서 큰 부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약속을 따라 순종하고 신뢰함으로 영원히 쇠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참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한다는 의미는 외적이고 형식적 차원이 아닌, 우리 마음이 진정 주님과 그분의 사역에 우선권을 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것은 세상에서의 고난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시 34:19에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도다.” 라고 했습니다. 또 그만큼 어렵게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의 참 기쁨은 하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실로 너무도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과 핍박을 능히 감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걸 언제 다하나? 걱정 마세요. 지금만 보면 됩니다. 1년 임직자도, 모든 기간도 다 시간이 흘러갑니다.>
● 물통을 내리기만 하면 됩니다.
브라질의 아마존 강은 세계 최대의 하구를 가졌다고 합니다. 하구가 얼마나 넓은지 양쪽 언덕이 안 보여 처음에 가는 많은 사람들은 바다에서 강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아직 바다 한 복판에 있는 줄 착각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대서양에서 폭풍 때문에 오래 표류한 배 한 척이 식수를 구하기 위하여 겨우 이 하구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해도 상으로는 분명히 아마존 하구에 도착했을 때가 되었는데 여전히 언덕이 안 보입니다. 마침 다른 배 한 척이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그 배의 한 사람이 소리 칩니다. “식수를 구하고 있는데 아마존 강은 어느 쪽이오.” 저쪽에서 고함소리가 돌아왔습니다. “당신들은 이미 맑은 물 한복판에 있소. 물통을 내려 뜨기만 하시오.”
우리는 이미 은혜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이미 성취되어 우리는 구원이라고 하는 맑은 물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물통을 내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부는 것입니다.
이미 죽음을 뛰어 넘고 세상을 이기신 주님의 사랑이 넘치도록 나를 둘러싸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생수와 같은 주님의 은혜는 물통을 내리는 자에게 값없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자녀 되었다는 사실 속에서만 안주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진정 그분은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주님께 의탁하고 주를 기쁘시게 하고자 하며, 더 나아가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추구하는 삶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늘 깨어 기도하며 생활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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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다운로드 | DATE : 2022-03-23 16: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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