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갚는 자의 심정으로. 롬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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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갚는 자의 심정으로. 롬 1:8-16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세상에는 좋은 빚과 악한 빚이 있습니다. 그러나 빚을 진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 노원구 하계동의 주택가 골목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탤런트 안재환 씨가 연탄을 피워 질식사를 택했습니다. 온 국민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살 이유는 눈더미처럼 붙어가는 사업 부채의 압박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 2009년 4월 3일, 경남 김해에서도 역시 빚 문제로 고민하던 주부 35살 이 모 씨가 6살과 4살 난 아들 2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경찰 관계자에 의하면 자기 여동생한테 돈 빌리고, 아는 사람한테도 돈을 빌렸습니다. 그러나 갚지를 못하고 빚 독촉에 시달리다 자살하였습니다.
● 2011년 4월 6일, 경기 고양시청 소속 공무원 30대의 유 모 씨가 사귀던 여성의 빚보증을 서줬으나 돈을 갚지 않으면서 빚 독촉에 많이 시달렸습니다. 결국은 병을 비관하여 경의선 철로 운정역과 탄현역 중간 지점에서 열차에 뛰어들어 죽었습니다.
● 2011년 8월 17일, 청주시의 한 아파트 13층에서 46세의 가장이 주식투자를 하다 빚을 진 일로 투신자살을 하였습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이런 결과를 보려고 주식투자를 했던 게 아닌데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 2019년도 k팝스타였던 설리에 이어 카라의 구하라 까지 자살로 생을 마감. 심한 우울증과 악풀로 인해..자살을 합니다. 악성루머는 잘못된 메스컴의 일방적인 까발기식 인권 침해 보도로 세상적인 잘못된 빚을 지게 만들어 연예인들의 속내를 건드려 피해를 주보는 경우임.
*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빚 없이 살고 싶지만, 대다수가 주택 구매, 자녀 양육, 병간호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누가 미련하게 자기 돈으로 사업 하냐?” 흔히 빚은 살림 밑천이라고 말은 하지만 크든 작든 빚으로 인해 온갖 스트레스와 고통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악덕 업체의 사채를 쓰면 기하급수적으로 이자가 불어서 몸을 담보로 점점 불안이 커져 더러는 빚 때문에 치가 떨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악성 부채와 루머로 상당한 심적 부담을 줍니다. 오죽하면 빚을 감당하지 못하여 목숨까지도 내 던지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 사랑의 빚진 영혼들이 아직도 마귀의 꼬임에 빠져 정욕의 노예 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마귀에게 빚진 줄 알고 사는 몰지각 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은 복음 전파의 자세를 채무자가 빚을 갚는 자의 심정이 되어 전한다고 고백합니다. 빚, 얼마나 고통스럽고 부담이 됩니까? 죽음으로도 몰고 가는 고통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바로 이런 마음의 자세를 가지라고 권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채무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정해 봤습니다.
1. 바울은 나는 빚을 진 자라고 공개합니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의 복음 전파에 대한 자세를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빚진 자(debtor)입니다. 바울이 당시 헬라인이나 야만인에게,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빚을 진 일이 없음에도 그들에게 빚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실제 물질의 빚을 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마치 빚을 진 사람처럼 반드시 갚아야 할 의무사항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말하는 빚이 무엇인지 그 빚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사람마다 견해가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빚(負債)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①물질의 빚입니다. 물질의 빚은 채무자와 채권자가 있어서 두 사람 사이의 채무 관계를 문서로 만들어 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빌려서 필요한 곳에 잘 사용했으면 당연히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 얼마간 시간이 지나 갚아야 할 때가 왔을 때 혹 해결책이 없으면 얼마나 답답합니까? 걱정되어 잠도 잘 오지 않고 입맛도 없습니다. 빚을 갚지 않는 이상 마음의 중압감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중압감은 다 정리해야 해방됩니다. 우리 신앙인이 물질의 빚을 질 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롬 13:08 피차 사랑의 빚(즉 예수님의 구원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무에게도 빚진 자가 아님에도 오직 예수님께 빚진 그 놀라운 사랑을 주님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에게 갚겠다는 것입니다.
②마음의 빚 영의 빚입니다. 마음의 빚도 채무자(갚을자)와 채권자(받을자)가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런 것은 문서로 남기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우리의 삶에서 부담을 주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마음의 빚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 빚을 못 갚는 다는 강박이 우울로 이어지기도 하고 “내가 이런 사람인가?” 라는 좌절과 한편으론 “나를 감히” 라는 자기 의로 인한 가롯 유다처럼 주께 빚을 지고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해결하려는 최종결정도 결국 자신이 주인처럼 여기는 마귀에게 속는 현장을 보게 됩니다. 이런 안 좋은 경우와는 다르게 정녕 이 사랑의 빚은 사회를 밝게 하여 마음에 기쁨을 주고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이런 빚은 주고 살아야지 계속 받기만하면서 살아간다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떤 빚을 지고 살아갑니까? 지난날을 돌아보면 우리는 죄인이요, 멸망의 길로 가는 자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어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의 빚, 생명의 빚을 졌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대하여 자신이 어떤 빚을 졌는지도 알았고 그 빚을 갚는 방법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을 빚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물질의 빚이 아니라 사랑의 빚 복음의 빚인 셈입니다. 바울은 평생을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이 빚을 갚기 위해서 이 동네 저 동네,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 고전 0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2. 그럼 복음의 빚은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의 사역 당시나 지금 우리의 현실 사회나 빚을 지고 사는 채무자는 반드시 그 채무를 이행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해결하지 못하면 무슨 일 당할지 모릅니다.
바울이 빚진 자라는 표현을 한 것은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감에 당연히 사로잡혀 있다는 뜻입니다. 만방에 복음을 마땅히 전해야 하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누구에게 빚진 자의 자세로 복음 전하겠다고 합니까? ①헬라인이나 ②야만인이나 ③지혜 있는 자나 ④어리석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헬라인과 야만인, 곧 지혜 있는 자는 헬라인, 어리석은 자는 야만인 이렇게 구분하였습니다. 언어와 교양의 대조입니다. 헬라인과 야만인은 국적과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말하며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는 지성과 교육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여기서 바울이 의도하는 것은 국적이나, 문화나, 언어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나, 적게 받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특별한 모습으로 소개합니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날 때 복음을 위하여 태어났음을 선언하는 겁니다.
● (마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롬 01:01….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할 수 있는 대로~ 원하노라.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뜨거운 소원이 있다는 뜻입니다. 나의 뜨거운 이 복음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합당이 여기시고 기회를 주신다면 즉시 로마로 달려가겠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이루실 일이 무엇인지를 감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복음을 위해 완전히 미쳤다고 선언하였습니다(고후 05:13).
하나님은 성전에서 예배만 드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우리만 즐거워하는 것도 원치 않으시고, 세상에서 소금과 빛 된 역할로 복음의 빚 갚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의 평생소원이 무엇입니까? 당시의 세계의 중심지 로마에 가서 내 한 몸을 내어놓고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일입니다. 바울의 이런 발걸음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바로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한 일입니다.
3. 나는 어떤 심정으로 복음을 전합니까?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채무자의 심정으로 온 세상을 다니면서 복음 전하겠다고 각오를 밝힙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차별이 없는 필연의 사명감입니다. 그러면 나는 복음을 어떻게 전합니까?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제나 봉사와 같은 선한 일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일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려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그 이유를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헬라의 문화권에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복음의 열정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편견과 반대로 인해 조롱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겠지만 그렇다고 복음 증거가 중단되어서야 되겠습니까? 복음의 열정과 담대함을 지금 회복할 때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의 열정 하나만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는 것 보다 귀한 자신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사실에 나도 공감하고 그런 열정에 나도 사로잡혀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두뇌가 비상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실상은 남다른 열정에 그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아는 만큼 말할 수 있고, 아는 만큼 행동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아는 만큼 영혼이 보이고, 복음을 아는 만큼 다가가서 말하고, 복음을 아는 만큼 영혼 구원을 위해 행동하는 법입니다. 롬 14:0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주님의 사랑에 미친 참된 의인은 바로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인 줄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세계에서 기업 가치가 제일 높은 회사가 어느 기업입니까? 미국 애틀랜타에 본부를 둔 약 125년의 역사를 가진 코카콜라 회사입니다. 미국의 외교관들도 감히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까지 진출했는데 이 회사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음료 시장을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코카콜라 회사가 성공신화를 이룬 배경에는 최고 경영자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의 여러 회장 중 1981년도에 취임한 로베르토 고이즈 웨타는 코카콜라 판매를 위해 완전히 목숨을 건 사람입니다. 이분은 자신의 모든 정열과 노력을 얼마나 코카콜라 판매를 위해 쏟아 부었는지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코카콜라만 생각하고 코카콜라 이야기만 하였습니다. 하루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내 혈관 속에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릅니다. 완전히 콜라에 미친 사람 아닙니까?
자 깨달음이 오십니까? 내가 국회나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아도 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열정, 그것은 우리의 일시적인 흥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열정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당신의 십자가만 지으시면 된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그 사랑이 심어지고 있으니 궁전에도, 가난한 자들의 거리에도 주님의 사랑이 전파 되는 것입니다.
어디를 옮기고 어디를 가고 좇아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내가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럼 세계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에게나, 금융기관에 빚을 져 본 일이 있습니까? 우리가 죽음을 택하지는 않을지라도 그것 때문에 얼마나 심적으로 압박을 받습니까? 성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님께 갚아야 할 복음의 빚, 이웃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의 빚이 있습니까? 지금부터는 그 빚을 갚는 삶을 잘 살기를 바랍니다. 내 혈관에는 예수님의 복음이 흐른다는 그런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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