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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눈은 안녕하십니까? 요 9:3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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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961회 작성일 21-12-0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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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러분의 눈은 안녕하십니까? 육안(肉眼),혜안(慧眼),영안(靈眼)/요 9:34-35-41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 청년 바울다마스쿠스(다메섹)로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하고 훌륭한 가말리엘 이라는 스승 밑에서 체계적으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터득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진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할 때 그리스도교진리를 거스르는 사악한 이단 집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판단 위에 그의 타고난 적극적 성격이 합쳐져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의 확고한 열정으로 열심으로 그리스도교도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췄습니다. 그는 땅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잠시 후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사흘 동안 눈이 먼 상태로 지내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 39절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 바로 그 말씀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놓고 그의 죄를 따지는 사람들 앞에서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주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분의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그런데 왜 기껏 보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할까요? 무슨 심술궂은 행동입니까?

죄인 된 우리는 누구나 영적으로 눈먼 상태로 태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활동과 섭리의 역사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태어난다는 거죠. 그 후 하나님께 의탁하는 삶을 통해 우리의 영적 눈이 조금씩 뜨여지게 됩니다. 영적 장님으로 태어나서 끝내 눈을 뜨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편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마귀의 유혹에 쓰인 최초의 범죄의 통로로 그 육신의 눈은 뜨여진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총명한 기운이 서린 눈, 혹은 진리를 밝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라는 뜻의 혜안(慧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잠깐 정리를 해보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영안(靈眼)이라고 하고, 일반적인 물체를 볼 수 있는 눈을 육안(肉眼)이라고 하고, 그리고 혜안(慧眼)이 있는 겁니다. 물론 영안과 혜안은 다릅니다. 영안은 하나님을 통해 인생의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이고, 혜안은 인간적 지식과 지혜를 통해 진리를 볼 수 있다고 하는 눈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혜안을 가진 이가 있습니다. 또는 자기가 혜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원래 혜안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곧 자신은 진리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고, 또한 교만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혜안을 가지게 되었다가 그 눈으로 하나님 존재의 중요성을 깨닫고 차차로 영안을 갖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진리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교만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기가 본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본다,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니, 이런 사람들은 속성상 지도자가 되려 합니다. 다른 사람들, 곧 육안만을 가진 사람을 이끌겠다고 나서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볼 때 이들은 여전히 장님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겠다고 나서니, 다른 사람들마저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된다는 겁니다. (마 15:14)의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초기의 바울은 자기가 스스로 터득한 지혜자라고 생각하는 혜안을 영안으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길잡이로 나서서 그리스도인을 박해했던 겁니다.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은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41절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는 말씀은, 자기에게 혜안이 없다고 생각하여 가만있으면 교만에 빠지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을 인도한답시고 나섰다가 오히려 구덩이에 빠뜨리는 죄를 안 짓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씀은, 모든 것을 본다,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면서 나서서, 다른 사람들을 구덩이에 빠뜨리고, 또한 교만에 빠지기 때문에 죄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39절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라는 말씀은, “나는 무지하고, 내가 진리를 보지 못하니 참 진리의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라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의탁하는 사람에게 영안을 허락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도마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도마는 제자로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말하자, “눈으로 그의 손에서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합니다. (요 20: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 즉 팔일 뒤에 다시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직접 다 확인을 시키십니다. 그런 후에야 도마는 주님의 부활을 믿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육안으로 보아야 믿느냐, 육안으로 보지 못하고도 영안으로 보고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간을 땅에 머무시고는 승천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예수님이 땅에 다시 내려오지 않으십니다. 재림 때까지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육안으로는 주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영안이 뜨여질 때 주님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 5:19)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우리 성도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안으로 즉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볼 수 있는 사람, 그가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영안을 구하지도 않고 주께서 주시지 않았기에 생겨나지 않았는데, 그래서 주님을 보지 못하면서도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는 불행한 것입니다. 그는 계속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착각하는 것을 진리라 믿기 때문에 더 죄를 짓고 사는 악한 존재 즉 마귀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 23:13~16)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도다.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 도다.

(마 23: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영안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입니다. 눈먼 거지 청년의 육안이 뜨여진 것이 복이 아니라,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하나님이 자신을 간섭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 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간섭을 느낄 수 있음이 왜 복이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기 전에 우선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래서 그의 삶을 간섭하십니다. 그런데 그 간섭을 못 느끼는 것은 왜 이고, 또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들에게나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거나, 혹은 존재는 믿더라도 존재 방식에 있어서 인간의 삶에 일일이 간섭한다는 형태를 부인하는 겁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믿기는 믿되 ‘인격적 존재’로 믿지는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부인하게 되면 하나님의 간섭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장님 앞에 예쁜 꽃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면 그 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못 보기에 없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코에 문제가 생긴 사람 앞에서 아름다운 향내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예쁜 꽃이 실재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실재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실재하지 않는 현상, 바로 그런 것과 같습니다.

● 얼마 전에 1996년 ‘언더그라운드’라는 영화를 보면. 2차 대전 당시, 유고에 자기네 나라를 지배하는 독일군에 저항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땅 속에 아주 큰 아지트를 마련하고 그 안에 살면서 독립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기를 만들어 밖으로 내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됩니다. 티토 대통령에 의해 독립정부가 세워진 겁니다. 그런데 지하 아지트와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역학을 하는 마르코라는 사람의 농간에 의해, 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독립된 것을 모르고 살게 됩니다. 계속 독일군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며 무기를 만들어 마르코를 통해 밖으로 내보냅니다. 처음 지하 생활을 할 무렵 나은 아이가 커서 지하 아지트에서 결혼을 하게 되는 세월이 흐를 때 까지 말입니다. 실제로는 독립이 되었지만 지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독일군의 지배하에 있는 겁니다. 그렇듯 하나님의 간섭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간섭은 실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 다시 우리들의 원래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봅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느낄 수 있음은 왜 복이 될까요?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일이 잘 풀릴 때입니다. 그때는 너무너무 신나고 기쁘고 감사하고 용기가 뻗쳐납니다. 눈을 뜨게 된 거지 청년이 바리새인들 앞에서 감히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변화와 용기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한편 하나님의 간섭을 못 보는 사람도 자신의 일이 잘 풀릴 때가 있는데, 그때 그들은 우월의식에 빠지게 됩니다. 교만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혹은 자기는 좋은 팔자를 타고났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일이 잘 풀릴 때, 영안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외형적 모습은 비슷할지 몰라도 내용적 질은 많은 차이를 지니게 됩니다. 둘째는 자신의 일이 잘 안 풀릴 때입니다. 시련을 당할 때입니다. 그 때는 이시련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 노력하게 됩니다. 자신을 점검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필요하면 회개의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하나님과 더 깊은 영적 교제를 갖습니다. 마침내 성숙의 소중한 계기가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간섭을 못 보는 사람이 시련에 빠지면 그냥 좌절하게 됩니다. 시련 앞에서 영안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은 이렇게 큰 차이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느끼는 사람, 곧 영안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복을 받는 겁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때, 그가 그 사랑을 수용하면 신이 나서 더 많은 사랑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을 수용해주지 않으면 기운이 빠지게 됩니다. 남녀 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부분은 여러분들이 대부분 경험해 보셔서 잘 아실 겁니다. 그렇듯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간섭하시는 건데 그걸 못 느끼면, 곧 영안이 막혀서 하나님의 사랑을 수용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신이 안 나실 겁니다. 그러나 영안을 갖고 그 사랑을 수용하면, 하나님도 더 신이 나셔서 더 깊은 사랑을 주시게 되는 겁니다. 새로운 사건을 허락하시는 겁니다. 안 될 일도 될 일로 바꾸어 주십니다. 더 섬세하게 간섭하시면서 은총을 더하여 주십니다. 때로 초자연적 능력의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바로 영안을 가진 사람이 받게 되는 복입니다. 터질듯한 감사와 용기, 성숙, 그리고 예정에 없던 은총의 사건을 만남, 이런 것들이 영안을 가진 사람이 받게 되는 복입니다.

육안을 가진 우리들은 혜안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영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영안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영화 ‘언더그라운드’에서 마르코라는 사람이 자기의 동지들을 속이고 몇 십 년 동안이나 땅 속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자기 동료의 여자를 빼앗기 위해서 시작된 음모입니다. 그 마르코가 오늘 우리들에게도 영안을 갖는 것을 가로막고 나섭니다. 그 마르코는 사탄이기도 하고, 또한 우리들 안의 욕심과 집착과 교만과 자기과시성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다가 눈이 멀게 된 바울 안수를 받고 3일 만에 시력을 회복합니다. 이는 비단 육안만이 회복된 것이 아니고, 영안이 뜨여진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갔다고 합니다. 바울의 영안을 가리고 있었던 비늘, 그 비늘이 지금 여러분의 영안을 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방법과 지식과 경험과 편견과 사상과 우상숭배와 아집으로 우리의 눈이 멀어 있지 않은가? 말입니다.

장님으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죄인 취급 받으면서 거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를 불쌍히 여기시사, 주님은 그가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마침내 영안마저 뜨여져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회당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럴 때 시험에 들 위험이 있습니다.

● (요 9:24~41)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주님은 그걸 아시고 그를 일부러 찾아가 완벽한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이미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본다고 하나 못 보는 것이 바로 영적인 장님입니다. 그 못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세상의 안목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더욱 정치 이야기와 먹는 이야기와 재산 이야기와 사람들 이야기와 이 땅에서 잘되는 즉 세상에서 잘 사는 법만을 위해 살며 자랑할 것입니다. 이미 그들의 눈을 장님되게 허락하심입니다. 내가 무슨 병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남의 죄만 본다는 사람들의 심판이 이미 시작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본문 39절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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