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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형통비결(단 6: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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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951회 작성일 21-08-0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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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형통비결(단 6:16-28)

16)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17)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더라 18)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 19)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20)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21)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3)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24)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 25)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범사가 형통하는 사람보다 복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시편 기자는복 있는 사람은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고 말씀합니다(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세상에서 말하는 형통과는 성격이나 내용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세상이 말하는 형통은 세상적 기준에 맞추어 보고 그 결과를 가지고 판단하고 자기 주관적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결과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고, 자기 주관적이지도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모든 초점이 하나님께 맞추어집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한마디로 세상의 땅의 법인가? 아님, 하늘의 법인가?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되어지는 것이 형통이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과정이나 내용과 결과 모두가 다 좋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형통을 신통이라고 말하고, 인간과의 형통을 인통이라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모든 형통의 기본은 하나님과의 형통입니다. 하나님과 형통하면 모든 범사가 형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 3서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한마디로 영혼이 하나님과 형통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형통하는 것이라는 즉 범사가 잘되고, 강건함이 된다는 말입니다. 영혼이 잘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막힘이 없고 소통이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잘되려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구하는 방법은 마 6장 33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삶의 우선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넘버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내 삶 가운데 고작해야 넘버2, 넘버3, 넘버10에 불과할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최고로 우선순위에 두고 섬기면 하나님은 하늘의 약속을 통해 우리를 최고로 만들어주십니다. 그리고 모든 범사를 형통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요, 모든 역사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형통을 원하신다면 가장 먼저 하나님과 소통해야 합니다. 예전에 부흥사분들이 단골로 사용하는 멘트가 있었습니다. 신통, 인통, 물통입니다. 무슨 말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른바 만사형통입니다. 그런데 형통은 아멘 한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노력한다거나, 종교생활을 모범적으로 한다고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간혹 분을 참지 못하고, 원을 풀지 못하면 분통 터지고, 원통해서 못 살게 되는 것을 봅니다. 원통, 꼴통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또한 악령의 임함이 보입니다.

● 또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라는 형통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형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육신의 형통을 바라지만, 하나님이 바라시는 형통은 내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코드와 나의 코드가 다릅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고, 하나님의 방법과 내 방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사 55:8 이는 내 생각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맞추고, 우리의 방법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진정한 형통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과 소통입니다. 하나님과 소통을 우선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잘되면 형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잘되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보내주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은 내가 그분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왕, 나의 머리, 나의 전부요, 신랑으로 인정하고 받아드리며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인하여 동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고전 3장 16절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내가 주님의 성전되어 사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주도권을 주님께 온전히 양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됩니다.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이듯이 나와 하나님도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연합이요, 소통이요, 형통입니다. 만일 하나님과 소통이 안 되면 영적으로는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안 되면 아무 일도 안 됩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얻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얻은 것이 아닙니다. 형통의 기본조건은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때문에 형통을 원하신다면 하나님과 먼저 소통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형통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 사함 받은 것이 형통이요, 고난을 참고 통과하는 것이 형통이며, 집을 나간 탕자가 다시 돌아와 자기 자리를 회복되는 것이 형통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이 형통이요, 광야를 통과하는 것도 형통이며, 요단강을 건너는 것도 형통입니다. 원수마귀를 물리침이 형통이요, 결과와 상관없이 평안한 것도 형통입니다. 다니엘은 형통한 자였습니다(28절). 그러면 다니엘의 형통 비결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형통 비결은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다니엘의 형통을 보십시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삶을 형통케 하셨습니다. 한창 꿈도 많고 아름답고 지식과 재주가 탁월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전도양양한 유다 소년 다니엘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그랬던 다니엘이 어느덧 말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말년의 상태를 본문 28절은 한 줄로 정리해줍니다. ‘형통하였더라.’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형통은 영육간의 성숙과 번영을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 속에는 엄청난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좋은 복은 말년의 형통입니다. 사람은 말년이 좋아야 좋은 것입니다. 끝이 좋은 사람이 좋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종의 미’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다니엘은 끝이 좋았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에서도 영욕을 누렸고,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 메대 바사 제국에서도 영욕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을 무너뜨린 메대 바사의 초대 통치권자 메대 사람 다리오가 62세의 나이로 짧은 기간 새 왕국을 다스리다가 바사왕 고레스가 뒤를 이어 왕으로 등극합니다. 그런데 6장 28절을 보면, 다니엘은 다리오왕의 시대와 고레스왕의 시대에도 형통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제국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형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당시 다니엘의 시대나 장소로 보건데 전혀 형통할만한 요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짜 형통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상황과 입장을 따지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속에서도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봉하셔서 상해치 않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형통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면 범사에 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바울과 실라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미합니다. 그랬더니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리고, 간수와 죄수를 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하나님이 바울과 실라를 형통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시면 어떤 상황이라도 반전이 되고 역전이 됩니다. 때문에 진정한 형통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을 보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진정한 형통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형통은 때와 장소와 사람을 초월해서 어떠한 불편함도 없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행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모든 기적과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과연 나는 그것을 하나님께 여쭈었는가? 아님, 나를 증거하며 높이거나 유익으로 삼았는가? 바로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ㅇ번 비춰 봐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형통은 시간과 장소, 사람과 환경을 초월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삶의 우선으로 삼지 않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이의 하나님은 자기 아이 학교 선생님보다 못합니다. 어떤 이의 하나님은 계모임의 계주보다 못하고, 동창회장보다 못하며, 동네 통반장보다 못합니다. 예전부터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3등입니다’라는 글입니다. 1등은 하고 싶은 일이요, 2등은 해야 할 일이며, 3등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가장 먼저하고, 그리고 해야 할 일을 처리한 후에, 여유가 생기면 하나님을 만난다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쓰다 남은 시간이나 물질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항상 나를 1등으로 여겨주신다고 말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부르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와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구할 때 하나님은 한번도 바쁘다고 거절하시거나, 피곤하다고 핑계하지 아니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은 몇 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쓰다 남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쓰다 남은 물질을 드리며, 쓰다 남은 건강을 드리는 것은 아니신지요?

하나님이 다니엘을 인정하시므로 다니엘도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었고, 다니엘이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았기에, 하나님은 다니엘을 형통케 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니엘을 형통케 하신 비결은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입니다.

(2) 기도 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형통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결은 모든 보여지든 안 보여지든 삶 가운데 내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 순간 마다, 즉 대화 마다 내 생각으로 고민하여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늘 주님의 음성과 의견을 듣는 기도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범사를 기도로 승부했습니다. 모든 문제를 기도로 뚫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주는 도구입니다. 기도는 믿는 자의 호흡이요, 생명의 젖줄입니다. 믿음의 성도는 마땅히 기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오늘날 성도들은 기도 없이 예수 믿는 노하우를 터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 기도입니다. 오죽하면 성경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강조하겠습니까!!!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요, 하나님의 자원을 내 것으로 사용하는 능력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에 가장 약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뇌물이나 불법이나 부정도 통하지 않으시지만 기도에는 꼼짝을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만사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을 가장 풍요롭고 평화롭게 해 줍니다.

엔드류 보니’라는 신학자는 ‘하나님 사람의 3가지 규칙’을 세웠답니다. 첫째, 성경읽기 전에는 절대 어떤 책도 읽지 않는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 말씀드리기 전에는 그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셋째,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전에는 절대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참으로 귀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다니엘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무리 한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어렸을 적부터 기도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고, 기도의 맛을 경험하고 산 사람입니다. 그는 기도를 먹고 마시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소통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과 소통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과 소통이 안되는 아픔을 아십니까? 아무리 불러 봐도 소용없는 메아리를 아십니까?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소통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형통케 하십니다. 다니엘은 왕의 금령으로 기도의 중지명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즉 공무원인데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전과 동일하게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자의 기도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형통비결입니다. .

(3)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는 힘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눈이 있고 부정적인 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사를 부정적인 렌즈를 끼고 바라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범사를 긍정의 렌즈로 바라봅니다. 어떤 색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세상은 다르게 보입니다. 이른바 착시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긍정에도 긍정의 힘이 있고, 부정에도 부정의 힘이 있습니다. 하면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비록 시간은 더딜지라도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안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은 속히 될 일도 잘 안됩니다.

<네 개의 눈: 내 눈, 남의 눈, 사단의 눈, 그리고 최고의 눈! 하나님의 눈>

때문에 성도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내 육신의 생각과 마음을 차단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할 수 있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부정의 힘을 차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에는 부정이 없습니다.때문에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살면 긍정적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긍정의 힘입니다. 믿음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가 속기 쉬운 함정이 하나 들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든 긍정이 믿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긍정이 믿음은 아닙니다. 무조건 긍정한다고 믿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혼동하지 마십시오. 모든 긍정은 모든 믿음을 보장하지 못하나, 모든 믿음은 모든 긍정을 보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도는 긍정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도의 긍정적인 힘은 아멘과 감사로부터 나옵니다. 아멘은 긍정의 고백이요, 감사는 긍정의 능력입니다. 아멘과 감사는 성도의 거룩한 에너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고후 1:20).

아멘과 감사는 성도의 신앙을 가장 복되게 하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은 아멘과 감사입니다. 다니엘의 신앙은 아멘과 감사의 신앙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드렸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포로로 잡아갑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을 먼저 끌어갑니다. 이른바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들을 끌어간 것입니다(1:4절). 이용가치가 있는 엘리트 청년들만 뽑아간 것입니다. 다니엘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평이 나올 수 있습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든지, 혹은 운대가 맞지 않았다는 등 말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순순하게 잡혀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감히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불평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현실을 받아드린 것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갈지라도 바벨론에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현실을 인정하되 체념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우리 같으면 억울하다고 불평을 쏟아냈을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억울한 나머지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들의 문화 속에 빠져 그들과 동화되어 살았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신앙은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섭리에 순종합니다. 때문에 불평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사자굴속에 들어가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위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높여드렸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감사신앙입니다. 감사신앙은 긍정적인 믿음입니다.긍정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오직 우리가 주님 안에서 살 때만 가능한 믿음이요,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명으로 살 때만 가능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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