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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중심설교연구시리즈 5-19.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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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954회 작성일 21-05-19 01:03

본문

성경중심설교연구시리즈 5-19.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본문: 요한복음 1:43~51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오늘 본문 말씀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 첫째는 예수님의 초청입니다.(43절)

오늘 본문 43절에 보면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안드레와 요한의 경우나 베드로와 야고보의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막 1장 16절에 보면 "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고 하셨고, 또 막 1장 19~20절에는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43절에는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빌립은 예수님께 초청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께 초청을 받은 인생들인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초청입니다. 사실 주님은 지금도 천하 인생들을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의 초청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의 초청을 수락하였습니다. 또 야고보와 요한도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의 초청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빌립도 자기의 길을 걷던 중에 초청을 받고 자기 용건을 뒤로 미루고 즉각적으로 예수님의 초청에 응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예수님의 전도단의 일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도 자기의 일터에 많은 사람을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의 초청을 분명히 받으셨습니까? 즉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초청장 말입니다. 또 성령도 여러분을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 22장 17절을 보면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님의 교회도 많은 사람을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이사야 55장 1절에 보면)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초청을 받고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의 부르심을 듣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몸된 교회로부터 권고를 접하고 있는 인생은 모두 소중한 인생들인 것입니다. 더욱이 주님의 요청을 거부하지 아니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와 심령으로 수락하는 인생들은 예수 전도단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자격자들인 것입니다.

● 둘째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교훈하여 주고 있는 것은 전도의 사명입니다.

예수의 제자 된 자는 반드시 남에게 전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빌립은 예수 전도단의 일원이 된 후 곧 자기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빌립은 벳새다 사람이요, 나다나엘은 가나 사람이었습니다. 벳새다에서 가나는 적어도 30리 이상이나 되는 먼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친구에게 예수님을 알려주고 싶어서 빌립은 나다나엘이 자기를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먼 길을 멀다 하지 아니하고 나다나엘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행동이며, 적극적인 인생의 첫걸음입니까?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나선 것은 친구에 대한 형제 우애요, 선생 예수님께 대한 완전 신뢰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에 대한 자녀로서의 보답인 것입니다.

우리도 빌립과 같은 고귀한 형제우애와 간절한 성의가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심방을 해보면 어떤 사람의 가정은 주인이 없거나 세대주가 없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의 가정은 어머니가 출가해 있는 큰딸과 작은딸까지 다 기별해서 함께 은혜를 받도록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는 가정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가정은 새로 도배까지 하여 집을 아름답게 단장해 놓고 대심방을 받는 가정도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빌립이 나다나엘을 위하여 쏟은 정성과 같은 정성을 쏟아 길을 찾아 나서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된 도리요, 예수 전도단의 일원이 된 신자의 특권인 것입니다.

● 셋째로 생각하려는 것은 나다나엘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입니다.

오늘 본문 47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즉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평을 하였습니다. 간사란 무엇입니까? 교활한 속임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고기를 낚기 위한 먹이를 가리켜 한 말입니다. 또는 짐승을 잡기 위한 미끼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간 사회 생활에 들어와서 사람 잡는 함정으로 변하였고, 그 후 다시 의미가 발전하여 속임수 또는 교활이 되고, 오늘날은 간사란 말이 이중인격과 표리부동 또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을 표현하는 데 쓰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보시고 내린 평가는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 옛날 야곱을 생각하고 말씀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창세기 27장 35절에는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예전성경) “아버지가 에서에게 하는 말이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삭은 야곱을 간교한 사람으로 평가했다는 말입니다. 또 야곱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열 명도 다 간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동생 요셉을 은 20에 팔고는 옷에다 숫염소의 피를 묻혀서 아버지에게 갖다 주면서 "우리가 이것을 주웠는데 요셉의 옷이 아닌가? 아버지께서 확인해 보시라"고 하였으니 열 형제들은 완전히 아버지를 속여 애통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인생들은 어떠합니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거짓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3절에는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신앙생활이나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의 대소 문제들은 사람의 바르지 못한 이 마음 즉 간사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47절에 보면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평가는 야곱보다도 더 고결하고 고상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또 이 평가는 나다나엘이 하나님 앞에 큰 복을 받을 사람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시편 32편 2절에 보면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왜 축복의 사람일 수밖에 없느냐 하면 그에게는 강포와 궤사 즉 거짓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 53:9)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오늘 나다나엘은 참으로 놀라운 평가를 주님께로부터 받았던 사람인 것입니다.

어찌하여 나다나엘은 그와 같은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를 기회 있을 때마다 자주자주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는 어떤 곳이었느냐 하면,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고요히 묵상하던 장소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희망과 구원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대망하여 고대하던 곳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바쁜 일손을 멈추고 잠시 동안이지만 하나님께 은밀히 기도를 드리던 곳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기도생활을 힘썼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람들 보는 데서 기도하기를 즐겨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잎이 무성하고 그늘이 짙은 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은밀히 기도를 많이 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기도생활을(참 호흡) 게을리 하는 데서 마귀를 닮아 가게 되며 한편, 기도생활을 부지런히 하는 데서 사람은 진실하여지고, 하나님을 많이 닮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다나엘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명심해야만 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 속에 간사가 없는 자로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무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 무화과나무 아래라고 하는 곳은 나다나엘이 그의 친구 빌립과 자주 만나던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자주 만났느냐 하면 하나님의 나라 일을 위하여 만났고 또 이 세상에서 같이 일하는 신령적 동료가 되기 위하여 자주 만났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장소 중에서도 신령적 동지가 되려고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모으는 그런 장소를 눈여겨 살피고 계셨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다나엘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거룩한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무화과나무 아래서 메시야를 대망하는 심사를 우리 주님은 읽으셨던 것입니다. 또 그 무화과나무 아래서 울부짖는 기도를 친히 들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화과나무 아래에 어제도 오늘도 나다나엘이 들르고 방문했던 행적을 주님을 감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48절에 보면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노라."라고 분명히 주님을 대답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다나엘의 일거수일투족을 30리 밖에서도 다 지켜보시는 참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드리는 예배와 우리의 공과공부 하는 것, 우리의 새벽기도 하는 것, 우리의 간절한 열심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봉사와 충성 여부 및 우리의 청년회, 여전도회 활동들 그리고 다달이 모이는 월례회 행사에 참석하고 아니하는 전부를 살피고 계시며 눈여겨보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아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하면, 오늘 본문 48절 말씀 즉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보았노라"하는 말씀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간의 직관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통찰력으로 우리의 신앙생활 하나, 하나를 점검하시고 평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한 주님 앞에 우리들도 신실하게 살아서 아름다운 증거를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도록 노력하고, 더욱 기도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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