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졸업장 그리고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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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졸업장 그리고 이력서
본문: 요한복음 12:1~11.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두 가지가 늘 따라다닌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지금의 그림자이고, 또 하나는 과거에서 지금까지를 말해주는 그의 이력서인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그림자는 해가 저물거나 해가 구름에 가려지면 자취가 없어지지만, 이력서는 해가 있을 때나 없을 때를 막론하고 항상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림자는 사라져도 이력서는 계속해서 이 세상에 남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이력서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력서란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시점에 언제 어디서 출생하여 무슨 학교를 나오고 무슨 직장에 근무했음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경력과 같이 자신을 잘 말해주는 것이며, 영원한 시점에서는 그가 일생을 어떻게 살다 갔는가 하는 여러 가지 행적을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겠지요. 성경에 보면 모든 천하인생은 약 서너 가지 유형의 인간 이력서로 그 행적이 나누이게 됨을 볼 수가 있습니다.
● 첫째는 많은 것을 가지고도 이렇다 할 만 한 행적을 못 남기고 간 사람의 이력서로서 그 대표자는 롯과 그의 아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 두 번째 유형은 많은 것을 가지고서 오히려 죄만 짓다가 간사람 이력서인데 그 대표자는 아담과 하와 또는 사울과 삼손, 가롯 유다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 그리고 세 번째 유형은 적은 것을 가지고도 모든 사람에게 큰 유익을 끼치고 간 이력서로서 여기에는 우리 주님을 비롯한 수많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 중에서 어느 유형에 속하는 사람의 이력서를 지금 작성하며 기록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사로는 적은 것을 가지고 살았으면서도 참으로 주님 곁에서 빛나는 이력서를 세상에 남기고 간 전형적인 성도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나사로의 이력서는 은혜의 보답 자로서 그가 이 세상을 살다 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이하를 보면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하는 것은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는 대목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받으신 대접이란 실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멸시와 천대(사 53:3 참고)를 제외하고는 특기할 만한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세리와 창기의 친구로 몰아 붙였습니다. 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유혹하는 자로 헐뜯었으며,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은 성전의 질서를 파괴하는 자로 예수님을 구박하였으며,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이스라엘 사회에 큰 장애물로 예수님을 보았던 것이며, 헤롯왕은 예수님을 요술과 마술을 행하고 다니는 기인으로 간주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기적과 표적을 베푸셨지만, 그와는 반대로 핍박을 받게 되었으며 시험하는 자의 신랄한 도전을 받게 되었으며 또 올무와 함정에 빠지는 큰 시련과 위험에 직면하지 아니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채찍과 매를 맞는 인생으로, 또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이 되어 우리 모든 인간의 죄 짐을 홀로 걸머지시고 곤욕과 심문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실로 악한 인생, 살려둘 수 없는 암적 인간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예수님은 마귀의 도전을 받았던 것입니다.
"네가 찬송 받으실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네가 진정 이스라엘의 구속자 메시야냐?"
"너는 유혹자가 아니냐?" "너는 본래가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너는 갈릴리 출신 요셉의 후손이 아니냐?"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과 그들의 지도자에게서 그런 질문과 모독과 중상과 푸대접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복음 12장의 기록을 보니까 예수님은 나사로의 친척이나 친구인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이라는 (마 26:6)신자에게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음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나사로는 얼마 전에 예수님께로부터 큰 부활의 은혜를 받은 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잔치 석에서 예수님은 귀한 주빈으로 참석하여 큰 대접을 받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수년 만에 처음 맛보는 인간대접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육간이 아울러 크게 기쁨을 만끽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 나사로의 가족들은 은혜의 보답자로 진정 빛나는 모범과 행적을 후세에 남겼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둘째는 나사로의 이력서는 그가 최선의 봉사자로 이 세상을 살아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사로는 매우 가난하고 빈약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고 다만 누님 마르다와 여동생 마리아뿐이었던 것입니다. 진정 초라한 가정이고 적막한 세대주였습니다. 밖에서 하루 종일 일하다가 집에 돌아와도 반겨 주는 아내가 없었고 또 식사하거나 가정예배를 드릴 때에도 재롱부릴 아이들도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오늘 임한 잔치 집은 시몬의 집인데 그는 나병환자이며, 혹자는 마르다의 남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낙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는 고독한 인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웃을 일이 없는 인간이 어떻게 남을 웃길 수 있겠습니까? 심리학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즐거움을 모르는 인생은 남을 즐겁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자기가 즐거운 만큼 남을 즐겁게 할 수가 있고, 자기가 기뻐하는 만큼 남을 기쁘게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받은 것으로 나누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좋은 영향력을 받고 누리고 쌓고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그의 누이 마르다는 예수님의 위하여 요리를 만들어 내느라고 보통 이상의 열정을 쏟고 있었으며, 나사로는 예수님을 주빈 석에 모시고 기쁨의 환담을 나누고 있었으며, 그의 동생 마리아는 최고의 향유 즉, 나드 기름을 예수님 몸에 부어 예수님을 흐뭇하게 또 영화롭게 하여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큼의 향유를 부었겠습니까? 본인은 전혀 셈을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계산에 빠른 가룟 유다는 그것이 300 데나리온의 값이라는 것을 재빨리 산출하여 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보통 장정이 열두 시간 노동한 하루의 품삯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 품삯을 십만 원이라 할 때에 삼 천 만원 어치가 된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영적인 여인 마리아가 갖고 있는 전 재산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 한국 사람은 출가하는 딸에게 옷장이나 가구를 마련하여 주는 것이 상례입니다마는 유대인들은 출가하는 딸에게 인도 또는 아라비아산 나드 향유를 마련해 준다고 합니다. 아마도 오늘의 향유는 마리아의 모친이 죽으면서 딸에게 건네준 유산이라고 보는 성경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향유는 가룟 유다의 산출대로 대단한 보화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와 같이 유대 여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나드 향유를 그리스도를 위해 다 부었으니 이것을 드린 동생 마리아나 이것을 드리도록 종용한 오라비 나사로는 분명히 최선의 봉사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때는 이렇게 정성을 기울여 해야만 된다는 모범을 나사로와 마리아는 우리들에게 보였던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나사로의 이력서는 열매 맺은 전도자로 그가 이 세상을 살았다고 하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고 하였습니다. 나 때문에 예수를 믿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전도의 열매가 분명한 것입니다.
나사로는 전도를 위해 죽었다가 살아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죽음에서 일어났을 뿐이고 이제는 감사로 예수님을 위한 감사 잔치를 가족들과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 인해 자연스럽게 복음이 이어갑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나사로의 이력서에서 다시 한 번 귀중한 교훈을 얻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고 하였습니다.
그것도 평안하거나 형통한 날에 그런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들이 나사로를 죽이려고 위협을 가하고 있는 역경 중에서 그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역경 중에 있으면서 또, 곤란 중에 있으면서 자기와 가족들의 집을 개방하고 예수님을 초빙하고 많은 사람들을 영접하고 모든 사람에게 신앙의 기회를 제공하여 준다는 것은 너무나도 빛나는 나사로의 이력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 밀레라고 하는 화가는 많은 여인의 나체 그림을 그려 놓고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자기 재주를 자랑하며 나날을 살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나체화를 구경하던 한 관람객이 자리를 뜨면서 중얼거리기를 "아깝다 이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저런 저속한 그림을 그리다니 참 아깝다"고 하는 힐책의 소리 한 마디를 듣고 그는 분연히 인생의 슬기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밀레는 새 출발하여 기도하고 명상을 계속하는 중에 얼마 안 가서 "만종"과 같은 유명한 성화를 그리는 위대한 인생이 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나사로의 이력서에서 빛나는 생의 지혜를 배워서 은혜의 배반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보답 자로 살아가고, 또 재물의 낭비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업의 부요 자로 살아가고, 재능의 방랑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공헌 자로 살아가고, 무의미한 인생으로 소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교회에 덕을 세우면서 봉사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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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다운로드 | DATE : 2021-09-08 19: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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