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를 걷는 법을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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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겸손”과 인간이 만들어낸 “비굴함”은 분명 다르지요.
참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치를 보며 하나님을 숨기는 것은 때로는 겸손이 아니라 두려움과 인본주의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스스로를 낮추셨지만 결코 진리를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어린 양처럼 침묵하셨지만,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 앞에서는 채찍을 드셨고,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향해서는 “회칠한 무덤”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온유는 진리를 포기하는 온유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도 그렇지요. 그는 왕 앞에서 자신을 높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사자 굴의 위협 속에서도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감출 분이 아니다”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장 10절. 사람 앞에서 “괜히 분위기 깨면 안 되니까”, “너무 믿음 이야기하면 부담스럽게 보일까 봐” 하며 하나님 이야기를 숨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을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보다 사람의 반응을 더 의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을 드러내는 방식이 공격적이거나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가면 또 다른 위험이 됩니다. 성경의 겸손은 “조용히 숨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영적 우월감으로 사람을 누르는 것”도 아닙니다.
◆핵심은 이것 같습니다. 나는 낮춘다. 그러나 하나님은 숨기지 않는다.
나는 드러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진리는 드러나야 한다.
이 균형이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모습이었지요.
특히 세 친구들의 고백은 정말 신본적인 믿음의 핵심 같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겠나이다.” 이건 자기 과시가 아닙니다. 자기를 높인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목숨까지 낮추면서 하나님만 높인 것입니다.
반대로 오늘 시대에는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믿음을 침묵시키는 분위기도 많습니다.
◆세상은 자기 욕망은 아주 담대하게 외치는데, 성도는 복음 말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이건 목사님 말씀처럼 다시 점검해야 할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지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 마태복음. 믿음은 결국 하나님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참된 겸손은 하나님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없어져도 주님은 드러나시길 원합니다.”라는 마음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특히 깊이 와 닿는 부분은 이것입니다.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낮추는 것은 옳지 않다.”
이건 매우 중요한 영적 분별 같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침묵인지, 정말 사랑으로 참고 있는 것인지 늘 성령 안에서 살펴야겠지요. 그리고 결국 믿음의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낮아졌고, 하나님은 높아졌고,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진리는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 길이 좁은 길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은 결국 그 길을 걸어갔던 것 같습니다,
물위를 걷는 법을 배워라.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은 마태복음 14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사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걷는 기술”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누구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원래 물 위를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배 밖으로 나갔습니다. “오라.”
그 말씀 하나를 붙든 순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 마태복음 14:30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갑자기 물리 법칙을 깨달아서 빠진 것이 아닙니다.
“바람을 보았다.” 즉, 환경을 보기 시작했고, 파도를 보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을 보기 시작했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를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순간 믿음은 꺾였습니다.
믿음은 “내 믿음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믿음은 “나는 안 되지만 주님은 되신다.”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반대는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시선의 이동”입니다.
예수님께 고정되었던 눈이 환경으로, 현실로, 두려움으로, 자기 계산으로 옮겨질 때 사람은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빠져가는 베드로가 외쳤던 짧은 기도입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때 즉시 예수님이 손을 내미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순간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시 주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흔들리는 이유, 가정이 무너지는 이유, 사람이 낙심하는 이유 중 하나는 파도가 커서만이 아니라 예수님보다 파도를 더 오래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믿음은 환경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예수님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물 위를 걷는 사람은 자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한 사람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
◆베드로의 이야기는 결국 “믿음의 크기”보다 “시선의 방향”을 보여주는 말씀 같아 참 깊습니다.
사람은 자꾸 자기 형편을 보고, 자기 연약함을 보고, 세상의 풍랑을 보지만,
예수님은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 손을 붙잡고 높은 곳도 건너듯이, 믿음은 내 발의 능력이 아니라 붙들고 계신 주님의 능력이니까요. 그래서 진짜 믿음의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예수님께 시선을 돌리는 사람인 듯합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베드로는 물에 빠진 뒤에도 결국 예수님 손에 의해 다시 배까지 함께 걸어 들어갑니다.
즉, 잠시 흔들렸어도 주님께 붙들린 믿음은 끝까지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 다음글“다시 자라나는 은혜” 2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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