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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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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7-25 18:33

본문

제목: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본문: 사무엘상 16:7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질문 하나를 던지십니다.

나는 너의 중심을 보고 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착한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인간 존재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십니다.

사람은 결과를 봅니다. 하나님은 동기를 보십니다.

사람은 행동을 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중심을 보실까요?

 

1. 하나님은 왜 중심을 보신다고 하실까요? 왜냐하면? 중심이 곧 그 사람의 좋아 하는 것이거나, 사랑이나, 우상이거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말할 수 있습니다. 찬양도 할 수 있습니다.

예배도 드릴 수 있습니다.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오면?

그 사람이 누구를 믿는지 중심이 드러납니다. 평안할 때는 모두가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골리앗이 나타나는 순간 진짜 중심이 드러났습니다.

 

2. 우주를 보면 인간의 지식과 교만은 얼마나 작은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수천억 개의 은하. 셀 수 없는 별들. 끝을 알 수 없는 공간.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지구는 먼지와 같습니다.

그 지구 위의 인간은 더 작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인간이 창조주를 판단하려 합니다.

자신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재단하고, 자신의 경험으로 진리를 결정하려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심장 한 번 뛰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존재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판단하려 합니다. 야고보는 말합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안개가 태양 앞에서 사라지듯,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작은 존재입니다.

 

3. 그런데 인간은 왜 교만해지는가?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비를 내려 주십니다. 햇빛을 주십니다. 생명을 주십니다. 건강도 주십니다. 시간도 주십니다.

그 은혜 속에서 인간은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왔다.”, “내 힘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가 세상을 멈추게 했습니다.

거대한 지진 앞에서, 태풍 앞에서, 죽음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집니다.

평소에는 왕처럼 살다가 죽음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떨게 됩니다.

고양이가 없을 때는 쥐가 왕 노릇하지만, 고양이가 나타나는 순간 쥐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교만도 그렇습니다. 무력이나 내가 통제 할 수 없는 힘이 다가오면 바짝 쫄아 버립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칠까봐 쫄기도 합니다.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4. 이스라엘은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몰랐던 민족이 아닙니다.

홍해를 건넜습니다. 만나를 먹었습니다. 율법을 받았습니다. 성막도 있었습니다.

성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반복해서 무너졌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현실을 더 크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오면 하나님보다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풍년이면 하나님보다 바알을 찾았습니다. 평안하면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결국 우상숭배란 돌이나 나무를 섬기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생기는 순간 우상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우상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신앙입니다.

 

5. 골리앗은 거인이 아니라 믿음을 드러내는 거울이었습니다.

골리앗40일 동안 서 있었습니다.

그동안 사울도, 장군들도, 이스라엘 군대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골리앗이 커서가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골리앗을 더 크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은 사람들의 중심을 드러내는 거울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우상 삼았던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험이며 기회였던 것입니다.

 

6. 다윗은 무엇이 달랐을까요?

다윗도 골리앗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심에는 골리앗보다 하나님이 더 크셨습니다.

다윗은 승리를 위해 나간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이름을 위해 나간 것도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다윗이 화가 난 이유는 자기 자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간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7. 오늘의 교회는 어떠할까요?

오늘날 우리는 교회를 다닙니다. 성경도 읽습니다. 예배도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묻고 계십니다. "너의 중심은 어디에 있느냐?"

정치에 흔들리고, 경제가 흔들리면 무엇을 붙잡습니까? 건강이 무너지면 누구를 의지합니까?

사람이 떠나면 무엇이 무너집니까? 그 순간 우리의 중심이 드러납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무신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결정은 세상이 합니다.

입술은 하나님을 말하지만 마음은 돈을 붙잡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결국 사람을 더 두려워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교묘한 우상숭배입니다.

 

8. 다윗은 누구를 예표 하는가?

다윗은 자기 힘으로 승리한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입니다.

온 세상이 죄와 사망이라는 골리앗 앞에서 떨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십자가 앞에 서셨습니다. 사람들은 도망쳤습니다. 제자들도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결론 : 하나님은 지금도 중심을 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누구를 가장 크게 보고 있느냐?"

골리앗입니까? 세상입니까? 돈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까?

 

우주의 창조주께서 오늘도 우리의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중심에 담고 있나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직분보다 중심을,

능력보다 중심을,

헌금보다 중심을,

설교보다 중심을,

봉사보다 중심을,

우리의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회개합시다.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던 마음을 회개합시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크게 보았던 정욕과 두려움의 마음을 회개합시다.

골리앗을 두려워했던 사울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 귀하게 여겼던 다윗의 중심을 구합시다. 그리고 다윗보다 더 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벧전 4:17) 심판은 세상이 먼저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중심을 살피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윗 한 사람을 통해 역사를 바꾸셨듯이, 오늘도 중심이 하나님께 향한 사람들을 통해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심이 되실 때,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중심이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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