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스데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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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권사 가정 봄 대심방. 말씀의 제목: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살게 되리.
말씀: 행 6:8-15. 찬송가: 28. 302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아니하는 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성경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기쁨과 평안을 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오늘 스데반과 같아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어떠했는지 1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천사의 얼굴은 어떤 얼굴입니까? 잘생긴 얼굴일까요?
유명한 배우를 보고, 우리가 그녀를 미인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천사의 얼굴과 같다'라고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탤런트들을 보고 미남, 혹은 잘생겼다고는 할지 몰라도 천사의 얼굴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천사의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평안을 주는 얼굴입니다. 즉, 마음의 평안이 어찌나 큰지 그 기쁨이 얼굴에까지 배인 사람, 그 평안이 얼굴에 나타나는 사람을 성경은 천사의 얼굴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스데반이 그러했다고 성경은 증거해 주십니다.
● 얼굴에 대한 에피소드를 가장 많이 남긴 사람이 아마 에이브라함 링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는 좀 추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의 국회 이야기를 하나 읽어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하루는 에이브라함 링컨이 국회에서 연설을 합니다. 그랬더니 그 맞은편 당의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당신은 두 얼굴을 가진 위선자요!" 라고 소리쳤습니다. 이것은 미국 사회에서 굉장한 욕입니다. 어떻게 감히 연설을 하고 있는데 두 얼굴을 가진 위선자라고 합니까? 그러나 그때 링컨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굉장히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여보시오! 내가 만약 얼굴이 두 개라면 왜 하필 이 중요한 자리에 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소!" 그의 이 말로 온 국회에 폭소가 터졌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얼굴이어야 합니까?
천사의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미남미녀가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보거든 빛을 발견하게 하라! 주 예수의 빛이 너희의 얼굴에서 나타나 천사의 얼굴과 같은 하나님의 영광을 너희의 얼굴에서 다른 사람들이 발견토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스데반의 삶을 통해서 권사님 가족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1. 부름 받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어떻게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가? 먼저 부름 받은 삶을 살게 됩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염려하며 사는 삶과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 분류해 주셨습니다.
● 염려하며 사는 사람들의 목적은 이 땅의 의식주가 전부입니다. 왜 염려하는가? 이 땅의 의식주를 가지기 위해서, 더 좋은 옷을 사기 위해, 더 넓은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입니다. 내 사업이 망하면 어떡할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매일매일 근심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근심'이라고 쓰여 있는 겁니다.
●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의 의식주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에 정신을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가기에, 환경에 관계없이 환경을 지배하며 평안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스데반의 삶을 관찰해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에 보니 공회 앞에 데려다 놓고 그를 욕합니다. 결국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공회의 현장, 수많은 사람들이 스데반을 모함하며 재판하는 자리에 있었던 그를 두고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았더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더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과 거룩한 소명을 날마다 이루며 살아갈 때 그 기쁨이 어떠하겠습니까? 그것은 환경이 막지 못합니다. 고통이 막지 못합니다.
2.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재미있는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3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그들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또 10절을 보면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의 관계가 원활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상한 원수관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옛날에 사귀던 친구들이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들이 지긋지긋하다고 손을 내젓는 것이 아닙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상사와 종업원, 친구, 성도, 어떠한 관계이든 그 관계 속에 원활한 물이 흘러서 화평케 하고, 원만하게 되는 것이 성령 충만의 증거인 줄 믿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 제1의 증거는 '관계의 충만'입니다.
우리가 지금 성령 충만해 있는가, 아닌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방언을 하는가? 예언을 하는가? 그런 것을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관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원활하다면 여러분은 지금 성령 충만 받고 있는 겁니다.
● 기독교는 수양의 종교가 아닙니다. 내 힘과 내 수련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율법주의일 뿐입니다. 기독교는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거듭나는 겁니다.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내 영이 죽어 있었는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내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성령 하나님이 나에게 찾아오셔서 죄로 말미암아 죽어 있었던 내 속의 영을 새롭게 잉태시켜 주는 겁니다. 잉태!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은 남자 없이 태어나셨습니다. 누가 마리아의 몸에 잉태시켰습니까? 성령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의미는 바로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잉태되는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너무나 신기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생명이 지금 내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은 무엇인가? 내 안에 계신 그 생명, 그 인격자, 그 하나님에게 내가 온전히 굴복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생각을 주장하게 하시고, 성령님이 우리의 말을 주장하게 하시고, 성령님이 우리의 돈 쓰는 것을 주장하게 하시고, 성령님이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을 주장하게 해 보십시오. 거기에 놀라운 평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여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순종할 때, 우리의 마음에 다시 기쁨과 평안이 찾아올 줄 믿습니다.
3. 은혜에 잠긴 생활을 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사도행전 6,7장을 읽으면서 참 재미있는 것은 스데반이 충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충만하다'는 단어는 '흘러넘친다.'는 뜻입니다. 컵에 물이 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부어서 물이 철철 넘치는 겁니다. 시냇물에 가뭄이 들어 물이 졸졸 흐르는 것이 아니라 흘러넘치는 겁니다.
여기서 다섯 가지를 얘기했는데, 지혜와 믿음이 흘러 넘쳤고, 성령과 권능이 흘러 넘쳤고, 이제 은혜가 그에게 충만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그에게 쏟아 부어졌던지,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그가 날마다 발견했던지 그의 삶 속에 은혜가 충만했다고 얘기합니다.
● 세상은 반드시 내가 받은 상처를 세상에 돌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상처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입고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갑니다. 때로 내가 잘못한 상처를 남에게 준 그것이 나에게 또 상처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처들이 우리의 얼굴을 어둡게 한다는 겁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기쁨과 평안을 빼앗아갑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으로 이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치유 가능하다고 얘기합니다.
"(히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오늘 이 세상은 천사 같은 얼굴을 기다립니다. 오늘 김정자 권사님의 가정에 성령의 생수가 충만하다 못해 흘러 넘쳐서 천사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고난이 옵니다. 사업이 흔들립니다. 짜증나는 일이 생깁니다. 몸이 힘듭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이깁니다.
부름 받은 삶을 살기에, 성령 충만함으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살기에,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삶을 작정하기에 늘 얼굴이 빛납니다. 그 얼굴에 주 예수의 빛이 저 태양보다 더 빛납니다.
2021년도 올 한해 주께서 성령께서 인도하셔서 하늘의 능력을 넘치도록 사랑으로 부으시사 스데반과 같이 직분에 충성하고, 하나님의 뜻에 충성하여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귀한 권사님 가정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천사의 얼굴을 보이며 살게 될 줄 믿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 행 6:8-15. 찬송가: 28. 302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아니하는 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성경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기쁨과 평안을 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오늘 스데반과 같아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어떠했는지 1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천사의 얼굴은 어떤 얼굴입니까? 잘생긴 얼굴일까요?
유명한 배우를 보고, 우리가 그녀를 미인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천사의 얼굴과 같다'라고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탤런트들을 보고 미남, 혹은 잘생겼다고는 할지 몰라도 천사의 얼굴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천사의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평안을 주는 얼굴입니다. 즉, 마음의 평안이 어찌나 큰지 그 기쁨이 얼굴에까지 배인 사람, 그 평안이 얼굴에 나타나는 사람을 성경은 천사의 얼굴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스데반이 그러했다고 성경은 증거해 주십니다.
● 얼굴에 대한 에피소드를 가장 많이 남긴 사람이 아마 에이브라함 링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는 좀 추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의 국회 이야기를 하나 읽어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하루는 에이브라함 링컨이 국회에서 연설을 합니다. 그랬더니 그 맞은편 당의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당신은 두 얼굴을 가진 위선자요!" 라고 소리쳤습니다. 이것은 미국 사회에서 굉장한 욕입니다. 어떻게 감히 연설을 하고 있는데 두 얼굴을 가진 위선자라고 합니까? 그러나 그때 링컨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굉장히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여보시오! 내가 만약 얼굴이 두 개라면 왜 하필 이 중요한 자리에 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소!" 그의 이 말로 온 국회에 폭소가 터졌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얼굴이어야 합니까?
천사의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미남미녀가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보거든 빛을 발견하게 하라! 주 예수의 빛이 너희의 얼굴에서 나타나 천사의 얼굴과 같은 하나님의 영광을 너희의 얼굴에서 다른 사람들이 발견토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스데반의 삶을 통해서 권사님 가족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1. 부름 받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어떻게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가? 먼저 부름 받은 삶을 살게 됩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염려하며 사는 삶과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 분류해 주셨습니다.
● 염려하며 사는 사람들의 목적은 이 땅의 의식주가 전부입니다. 왜 염려하는가? 이 땅의 의식주를 가지기 위해서, 더 좋은 옷을 사기 위해, 더 넓은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입니다. 내 사업이 망하면 어떡할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매일매일 근심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근심'이라고 쓰여 있는 겁니다.
●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의 의식주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에 정신을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가기에, 환경에 관계없이 환경을 지배하며 평안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스데반의 삶을 관찰해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에 보니 공회 앞에 데려다 놓고 그를 욕합니다. 결국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공회의 현장, 수많은 사람들이 스데반을 모함하며 재판하는 자리에 있었던 그를 두고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았더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더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과 거룩한 소명을 날마다 이루며 살아갈 때 그 기쁨이 어떠하겠습니까? 그것은 환경이 막지 못합니다. 고통이 막지 못합니다.
2.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재미있는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3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그들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또 10절을 보면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의 관계가 원활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상한 원수관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옛날에 사귀던 친구들이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들이 지긋지긋하다고 손을 내젓는 것이 아닙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상사와 종업원, 친구, 성도, 어떠한 관계이든 그 관계 속에 원활한 물이 흘러서 화평케 하고, 원만하게 되는 것이 성령 충만의 증거인 줄 믿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 제1의 증거는 '관계의 충만'입니다.
우리가 지금 성령 충만해 있는가, 아닌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방언을 하는가? 예언을 하는가? 그런 것을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관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원활하다면 여러분은 지금 성령 충만 받고 있는 겁니다.
● 기독교는 수양의 종교가 아닙니다. 내 힘과 내 수련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율법주의일 뿐입니다. 기독교는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거듭나는 겁니다.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내 영이 죽어 있었는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내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성령 하나님이 나에게 찾아오셔서 죄로 말미암아 죽어 있었던 내 속의 영을 새롭게 잉태시켜 주는 겁니다. 잉태!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은 남자 없이 태어나셨습니다. 누가 마리아의 몸에 잉태시켰습니까? 성령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의미는 바로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잉태되는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너무나 신기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생명이 지금 내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은 무엇인가? 내 안에 계신 그 생명, 그 인격자, 그 하나님에게 내가 온전히 굴복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생각을 주장하게 하시고, 성령님이 우리의 말을 주장하게 하시고, 성령님이 우리의 돈 쓰는 것을 주장하게 하시고, 성령님이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을 주장하게 해 보십시오. 거기에 놀라운 평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여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순종할 때, 우리의 마음에 다시 기쁨과 평안이 찾아올 줄 믿습니다.
3. 은혜에 잠긴 생활을 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사도행전 6,7장을 읽으면서 참 재미있는 것은 스데반이 충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충만하다'는 단어는 '흘러넘친다.'는 뜻입니다. 컵에 물이 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부어서 물이 철철 넘치는 겁니다. 시냇물에 가뭄이 들어 물이 졸졸 흐르는 것이 아니라 흘러넘치는 겁니다.
여기서 다섯 가지를 얘기했는데, 지혜와 믿음이 흘러 넘쳤고, 성령과 권능이 흘러 넘쳤고, 이제 은혜가 그에게 충만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그에게 쏟아 부어졌던지,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그가 날마다 발견했던지 그의 삶 속에 은혜가 충만했다고 얘기합니다.
● 세상은 반드시 내가 받은 상처를 세상에 돌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상처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입고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갑니다. 때로 내가 잘못한 상처를 남에게 준 그것이 나에게 또 상처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처들이 우리의 얼굴을 어둡게 한다는 겁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기쁨과 평안을 빼앗아갑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으로 이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치유 가능하다고 얘기합니다.
"(히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오늘 이 세상은 천사 같은 얼굴을 기다립니다. 오늘 김정자 권사님의 가정에 성령의 생수가 충만하다 못해 흘러 넘쳐서 천사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고난이 옵니다. 사업이 흔들립니다. 짜증나는 일이 생깁니다. 몸이 힘듭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이깁니다.
부름 받은 삶을 살기에, 성령 충만함으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살기에,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삶을 작정하기에 늘 얼굴이 빛납니다. 그 얼굴에 주 예수의 빛이 저 태양보다 더 빛납니다.
2021년도 올 한해 주께서 성령께서 인도하셔서 하늘의 능력을 넘치도록 사랑으로 부으시사 스데반과 같이 직분에 충성하고, 하나님의 뜻에 충성하여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귀한 권사님 가정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천사의 얼굴을 보이며 살게 될 줄 믿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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