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갱신칼럼] 공동체적으로 참여하는 성찬 / 차성도 교수
페이지 정보

본문
[교회갱신칼럼] 공동체적으로 참여하는 성찬 / 차성도 교수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6,47)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초대교회가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며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면서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이 더했음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 유월절 식사 중에 성찬을 베푸셨듯이,
초대교회에서도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과 식사의 교제인 애찬의 구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고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릴 것을 고린도교회에게 권하기도
하였다.(고전 11:33,34)
세례/침례와 함께 성찬이 주님의 핵심 명령이기에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성찬에 참예하였다.
구교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줄지어 성체라고 불리는 밀떡을 신부로부터 받아서 먹고 포도주는 신부들만 마시지만,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모든 미사 때마다 성찬을 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어떤 이유에서
인지 일 년에 몇 차례만 성찬을 행하고 있다.
많은 신학자들이 개신교가 가톨릭의 잘못된 의식들을 개혁하면서, 마치 아기를 목욕시킨 물이 더럽다고 물과 함께
아기까지는 버릴 수 없음에도 핵심 의식인 성찬을 너무도 등한시한다고 지적한다.
성찬으로 자신을 기념하라는 주님의 분명한 명령에 따라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성찬을 통해 주님의 몸과 피를
기억하였다.
주님의 몸과 피, 그자체가 어떤 메시지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조금 번거롭다는 이유로 제한할 것이 아니
라 더 자주 그리고 더 진하게 성찬에 참예해야한다.
초대교회의 전통을 계속 살려가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의 핵심적인 가치인 공동체성이 성찬을 통해서도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모든 지체들이 진하게 참예하는 성찬을 소개해본다.
성찬은 매달 셋째주일에 갖는데, 성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일예배의 모든 순서들이 성찬에 초점을 맞추어서 진행
된다. 성찬과 관련된 설교가 선포된 후에 모든 지체들은 성찬 테이블을 중심으로 둘러앉는다.
규모가 큰 교회에서는 그룹별로 성찬 테이블에 나누어 앉을 수도 있을 것이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17)의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성찬 테이블에는 한 개의 떡과 한 개의 큰 잔이 준비된다.
주님의 대속을 조용히 찬양하면서 주님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충분히 묵상한다.
성찬을 위한 기도가 드려진 후에 성찬위원들에 의해 성찬이 수동적으로 베풀어지기보다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개개인이 주님의 몸과 피에 직접 능동적으로 참예할 기회를 열어 놓는다.
마음의 준비된 사람부터 조용히 성찬 테이블 앞으로 나가서 떡을 떼어 손에 들고 자기를 위해 찢기신 주님의 몸을
깊이 묵상한 후에 떡을 포도주에 적신 후 다시 자기를 위해 흘리신 주님의 피를 충분히 되새기면서 떡과 피의 의미
가 마음에 다가올 때에 입안에 넣는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손에 떡을 잡고 “주님의 몸이 나의 참된 양식이 되시며”, 포도주에 적시고 “주님의 피가 나의
심장에 흘려 주님의 생명이 내 몸 안에 넘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곤 한다.
주님의 몸과 피를 충분히 음미하며 개인적으로 성찬에 참예하기도 하지만, 다른 지체와 더불어 성찬에 참예하는
것은 의미가 더욱 크다.
지난 번 성찬에서는 아들의 손의 잡고 함께 성찬에 참예하였다. 아들이 떡을 떼며 “이 떡은 주님께서 아빠를 위해
찢기신 몸이며”, 포도주에 떡을 적시며 “이 포도주는 주님께서 아빠를 위해 흘리신 피입니다.”라면서 저의 입안에
넣어줄 때, 주님의 보혈이 넘쳐흐르듯이 그 어느 성찬보다도 감동이 마음속에 넘쳐났다.
한번은 주일아침 예배시간에 맞추어 출발하는 문제로 아내와 옥신각신하여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함께 성찬에
참예하면서 서로간의 갈등이 주님의 보혈로 덮이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성찬 때마다 주님의 몸과 피를 충분히 묵상하면서 조용히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지체들을 많이 볼 수 있고, 함께
성찬에 참예한 후에 서로를 포옹하고 한참이나 흐느끼는 지체들을 자주 목격한다.
이제 연간 계획에 의해 실시되는 성찬이 아니라, 성찬의 의미를 되새길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성찬중심의
예배를 가급적 자주 가져보자! 그리고 지체들이 공동체적으로 참예할 수 있도록 성찬을 열었을 때, 다 한 떡에
참예함으로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루며 주님의 생명력으로 넘칠 뿐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전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성찬의 의미를 더욱 살릴 수 있도록 성찬을 열어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고도 풍성
하게 성찬을 채우시는지 경험해보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6,47)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초대교회가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며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면서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이 더했음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 유월절 식사 중에 성찬을 베푸셨듯이,
초대교회에서도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과 식사의 교제인 애찬의 구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고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릴 것을 고린도교회에게 권하기도
하였다.(고전 11:33,34)
세례/침례와 함께 성찬이 주님의 핵심 명령이기에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성찬에 참예하였다.
구교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줄지어 성체라고 불리는 밀떡을 신부로부터 받아서 먹고 포도주는 신부들만 마시지만,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모든 미사 때마다 성찬을 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어떤 이유에서
인지 일 년에 몇 차례만 성찬을 행하고 있다.
많은 신학자들이 개신교가 가톨릭의 잘못된 의식들을 개혁하면서, 마치 아기를 목욕시킨 물이 더럽다고 물과 함께
아기까지는 버릴 수 없음에도 핵심 의식인 성찬을 너무도 등한시한다고 지적한다.
성찬으로 자신을 기념하라는 주님의 분명한 명령에 따라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성찬을 통해 주님의 몸과 피를
기억하였다.
주님의 몸과 피, 그자체가 어떤 메시지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조금 번거롭다는 이유로 제한할 것이 아니
라 더 자주 그리고 더 진하게 성찬에 참예해야한다.
초대교회의 전통을 계속 살려가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의 핵심적인 가치인 공동체성이 성찬을 통해서도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모든 지체들이 진하게 참예하는 성찬을 소개해본다.
성찬은 매달 셋째주일에 갖는데, 성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일예배의 모든 순서들이 성찬에 초점을 맞추어서 진행
된다. 성찬과 관련된 설교가 선포된 후에 모든 지체들은 성찬 테이블을 중심으로 둘러앉는다.
규모가 큰 교회에서는 그룹별로 성찬 테이블에 나누어 앉을 수도 있을 것이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17)의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성찬 테이블에는 한 개의 떡과 한 개의 큰 잔이 준비된다.
주님의 대속을 조용히 찬양하면서 주님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충분히 묵상한다.
성찬을 위한 기도가 드려진 후에 성찬위원들에 의해 성찬이 수동적으로 베풀어지기보다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개개인이 주님의 몸과 피에 직접 능동적으로 참예할 기회를 열어 놓는다.
마음의 준비된 사람부터 조용히 성찬 테이블 앞으로 나가서 떡을 떼어 손에 들고 자기를 위해 찢기신 주님의 몸을
깊이 묵상한 후에 떡을 포도주에 적신 후 다시 자기를 위해 흘리신 주님의 피를 충분히 되새기면서 떡과 피의 의미
가 마음에 다가올 때에 입안에 넣는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손에 떡을 잡고 “주님의 몸이 나의 참된 양식이 되시며”, 포도주에 적시고 “주님의 피가 나의
심장에 흘려 주님의 생명이 내 몸 안에 넘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곤 한다.
주님의 몸과 피를 충분히 음미하며 개인적으로 성찬에 참예하기도 하지만, 다른 지체와 더불어 성찬에 참예하는
것은 의미가 더욱 크다.
지난 번 성찬에서는 아들의 손의 잡고 함께 성찬에 참예하였다. 아들이 떡을 떼며 “이 떡은 주님께서 아빠를 위해
찢기신 몸이며”, 포도주에 떡을 적시며 “이 포도주는 주님께서 아빠를 위해 흘리신 피입니다.”라면서 저의 입안에
넣어줄 때, 주님의 보혈이 넘쳐흐르듯이 그 어느 성찬보다도 감동이 마음속에 넘쳐났다.
한번은 주일아침 예배시간에 맞추어 출발하는 문제로 아내와 옥신각신하여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함께 성찬에
참예하면서 서로간의 갈등이 주님의 보혈로 덮이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성찬 때마다 주님의 몸과 피를 충분히 묵상하면서 조용히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지체들을 많이 볼 수 있고, 함께
성찬에 참예한 후에 서로를 포옹하고 한참이나 흐느끼는 지체들을 자주 목격한다.
이제 연간 계획에 의해 실시되는 성찬이 아니라, 성찬의 의미를 되새길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성찬중심의
예배를 가급적 자주 가져보자! 그리고 지체들이 공동체적으로 참예할 수 있도록 성찬을 열었을 때, 다 한 떡에
참예함으로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루며 주님의 생명력으로 넘칠 뿐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전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성찬의 의미를 더욱 살릴 수 있도록 성찬을 열어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고도 풍성
하게 성찬을 채우시는지 경험해보자!
- 이전글(CCM같기도 가요 같기도)DnD- How Great is Your Love 07.09.17
- 다음글가정폭력예방을 위한 10가지 지침. 07.09.1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