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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모험적 신앙 500.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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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39회 작성일 19-09-3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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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모험적 신앙 500. 496.

(창 7:13~24)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17)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4)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우리들의 삶은 첫 번째 생동감 있는 모험적 믿음의 신앙으로 사는가?

두 번째 두려움에 익숙한 비판과 불평의 삶을 사는가? 를 선택하는 것이다. 라고 주께서 ..

구약에 나오는 신앙의 모험가 중에 아브라함이 있고, 노아가 있고, 요셉이 있습니다. 이 세 사람 중 노아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도덕적으로 고결하며 정직하고 그 시대의 도덕의 모범이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는 비상한 일이라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배를 산 위에 지었습니다. 그것도 장마 때가 아닌 맑은 날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지으라 하시니 지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루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는 큰일만을 하나님과 의논한 것이 아니요, 작은 일도 하나님과 일일이 의논했습니다. 세계 평화라든가, 인류의 장래라든가, 이런 큰일만이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는 치통이라 할까, 우리가 써야 할 편지라든가, 화병에 꽂는 꽃에 대해서도 하나님과 의논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이런 자질구레한일들의 총화입니다. 방주에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짐승 한 쌍씩을 들여보냈습니다. 신앙의 모험가에는 다음 날, 다음 시간의 일들이 모두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일은 확실합니다. 그 방주를 받으신 이가 방주를 열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항해하늘 일은 모험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목적 없는 항해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적인 감동과 종교적인 신만이 아니라 우리 운명 그 자체의 주인공이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질병 중에 고생을 극기라고 용기를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그 질병 자체를 고쳐주십니다.

노아의 가족은 근 200여일 만에 방주에서 나와 처음으로 육지에 발을 디뎠을 때에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을 향하여 제단을 쌓고, 그에게 감사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정상적인 인간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선 천막과 임시대피소를 지을 생각을 할 것이며, 샘과 음식물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다른 모든 번제를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께 예배할 장소를 찾아 제단을 쌓았습니다. 노아의 기본 생각과 생활은 언제든지 하나님과 접촉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이 시간까지 살아온 그의 발자취를 돌이켜 볼 때, 그가 사람들이 보기에 굉장히 공상적인 일에 착수했을 때에 그는 다른 사람들의 조소나 비평보다도 우선 자기 자신의 이성과 싸워야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보지 못한 것을 믿었으며 지향할 데가 없는 이성을 달래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명령에 맹목적 복종으로 자기 자신을 붙들어 매는데 회의와 불안도 느꼈던 것입니다. 또 상식적인 사람들의 비웃음과 멸시의 눈초리도 그의 신경을 건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신앙은 “나의 하는 일은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코 나를 실패케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라는 확신을 끝까지 견지 하였습니다. 이런 신앙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아도 하나님 편에 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하여 시대적인 선각자가 되며 항상 영원한 약속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창조적 소수가 되는 것입니다. 노아는 소극적으로 죄악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창 7:23), 적극적으로 그 시대에 의를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홀로 남은 자는 고독합니다. 그러나 의롭게 산 사람이 의롭게 살았고, 때지어 다니는 대중보다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넓은 길, 평탄한 길을 선택할 때 홀로 남은 사람은 좁은 길, 생명의 길,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결과론적으론 노아의 전도를 아무도 듣지 않았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충성되어 다는 것입니다. 결국 잘 전했다는 것입니다.

넓은 길은 쉬운 길이요, 좁은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많은 사람이 따르는 것은 참 쉽고 즐겁고, 자랑스러운 일 아닙니까?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고, 오히려 조롱의 소릴 들으면서 방주에 단 한명도 더 구원하지 못했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는 동기가 충분히 되지 않겠습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결단이 이런 노아의 순종을 통해서 잘 들어나는 것입니다. 자동차 운전기술 강습 과정에서 가장 힘든 대목은 일직선 운전이라고 합니다. 커브를 꺾는 운전이라면 몰라도 일직선으로 곧게 차를 몰고 나아가는 것이야 무엇이 그리 어려우랴 싶지만 막상 해 보면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의란 바르고 곧은 것을 말하며, 곧음이란 목표를 전제로 합니다. 표준이 없는 곳에서는 곧고 말고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분 나는 대로 산다면 편리하고 쉽겠지만 일정한 목표에 맞추어 곧고 바르게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애쓰면 애쓸수록 표준에서 빗나가기만 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는 바르게 직선적인 인생을 잘 살아 나아간 의인이었던 것입니다. 기도는 믿음을 만들어 주는 말씀 즉, 믿음이란? 용기가 없는 자에게 꼭 필요한 힘입니다. 그 믿음을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어느 교우 가정에 벽시계가 절반은 옆으로 누운 채 삐딱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연유를 물어 보니 40년이 넘는 고물이어서 그래야만 간다는 것입니다. 낡고 병든 사회는 마치 고물 시계와 같아서 비정상이 도리어 정상으로 통하게 되는 것처럼 이런 비틀어진 세상에서 곧고 바르게살기란? 정말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점잖던, 그리고 경건하던 집사도 남대문 시장 안에서는 선량하게만 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의인이 되기 쉬어도, 사회 안에서 의인되기는 힘듭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인정받고 칭송을 받을 정도였으니 족히 방주의 주인공이 될 만합니다. 노아의 모험적 신앙은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지켜 오고 성장해 온 신앙생활이었던 것입니다. 노아의 신앙은 성장하는 신앙이었습니다. 홍수가 와서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 버리고, 매장해 버렸을 때 노아는 그의 신앙을 큰 재난 위에 높은 곳에 두는 신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죽이고 파묻고 석권하던 그 재난 자체가 우리를 높이 쳐 받들어 주는 힘이 되는 것, 이것이 곧 신앙의 기초입니다. 신앙은 땅 속의 씨앗처럼 자라서 추수 때가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이 성장의 과정은 느리고 시간을 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3:12에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 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온전히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에 실망과 공포, 생활의 불안, 시련과 환란, 이런 것들이 홍수처럼 우리를 휘몰아 갈지라도 신앙을 가진 자는 여기에 삼킴을 당하거나 파묻히지 않고 도리어 신비스럽게 그 위를 거닐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홀로 남아 신앙 지조대로 사는 노아의 모험적 신앙을 소유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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