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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주간 (정월 초하루) 제목: 설날에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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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29회 작성일 26-02-14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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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주간 (정월 초하루) 제목: 설날에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3가지.
교독문: 94. 새해(2). 본문: 창세기 8:13–14.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 날에 땅이 말랐더라.

◆아름다운 주일 아침,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틀 후면 음력 설날, 정월 초하루입니다. 성경을 보면 놀랍게도 정월 초하루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중요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을 통해 새해의 시작을 믿음과 소망으로 열고자 합니다. 옛사람들은 설 전날인 섣달그믐에 어른들을 찾아뵙고 절을 올렸습니다. 그것을 묵은세배라 하는데, 그해를 살아서 잘 보낸 것에 대해 웃어른들께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입니다. 살아온 날을 감사함으로 돌이켜본다는 사실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귀성행렬을 볼 때마다 도대체 어떤 힘이 저들을 고향으로 잡아당기는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 뿌리에 대한 그리움과 두고 떠나온 조상에 감사를 찾음이지요.

◆어린 시절 맞이했던 설날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시골 친구 집에 가거나 우리 집에 있으면 식구들이 모여 식혜도 만들고, 조청도 만들고, 한과도 만드느라 아궁이에 불을 많이 땐 탓에 아랫목이 절절 끓었습니다. 모처럼 맛보는 그 넉넉함에 마음이 절로 흥감해져 잠을 잘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어쩌다 보면 아버지가 떡국 떡을 썰고 계십니다. 썰어야 할 떡을 눈으로 가늠해보고는 ‘저걸 언제 다 써나’ 하는 막막함에 이내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침에 부모님께 세배를 올리고, 떡국 한 그릇을 먹고 나면 도저히 집에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집 저집 돌며 세배를 드리면 어른들은 엿이며 강정이며 주전부리를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저마다 가난하던 시절이라 세뱃돈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의젓하게 덕담을 듣고 물러나와 다음 집으로 줄달음쳤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 그런데 혹시 유대인들의 설날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에 대해 아십니까? 로쉬는 ‘머리’라는 뜻이고, ‘하샤나’는 ‘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한 해의 머리가 되는 날이라고 새기면 되겠습니다. 이 절기는 유대의 종교력으로 티쉬리Tishri월 첫 날 시작됩니다. 우리 달력으로는 9월 말이나 10월 초에 해당하는데, 이때를 * 새해로 잡은 까닭은 탈무드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때가 바로 티쉬리월입니다. 로쉬 하샤나는 우리 생명의 목적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삶을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절기입니다.

1. 오늘은 성경에서 찾아보면, 정월 초하루는 “물이 걷힌 날”입니다.
– 환난 중에 주신 회복의 날. “육백일 년 정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창 8:13–14) 노아 시대의 홍수는 사람, 동물, 식물, 세상의 모든 것을 삼켜버린 큰 환난이었습니다.
(7:12) 40주야 동안 비가 쏟아지고, 땅의 깊음의 샘이 터지며, 물은 (7:24)150일 동안 온 땅을 덮었습니다. 그 속에서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 8명만 방주 안에서 보호받았습니다.
(‘배 선(船)’ 자에 입 구(口) 여덟 팔, 즉 8명이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한자 시작: BC 2500년에 시작되고,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
(배 주, 여덟 팔, 입 구 사람을 의미) 얼마나 두렵고 막막했겠습니까?
그래서 노아는 까마귀도 내보내고, 비둘기도 내보내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 그런데 노아 나이 홍수 다음 해인 601년 정월 초하루, 👉 마침내 물이 걷히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이 완전히 마른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끝이 보인다.”는 하나님의 신호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지금까지 나를 덮고 있던 문제, 앞이 보이지 않게 하던 상황, 숨 막히게 하던 형편 👉 올해는 걷히기 시작합니다. 마치 짙은 안개 속에서 운전하다가 햇빛이 비치며 시야가 열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길을 보이시기 시작하실 줄 믿습니다.

2. 정월 초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날”입니다.
– 새해를 여는 말씀의 시작. (에스겔서 29:17) “제 이십칠 년 정월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하나님은 언제든 말씀하실 수 있지만, 성경은 특별히 정월 초하루에 말씀이 임했다고 기록합니다. 👉 새해의 첫날을 말씀으로 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아주 쉬운 비유가 있습니다.
📻 라디오를 들으려면 주파수를 맞춰야 합니다. KBS를 들으려면 KBS에 맞추어야 하지요.
조금만 틀어져도 잡음이 들립니다. 👉 하나님의 음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주파수를 맞추면 세상 소리만 들리고 하나님께 맞추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 구체적인 실천 말씀 선포되는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십시오.
“이 말씀이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13)
👉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면, 인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3. 정월 초하루는 “성막을 세운 날”입니다.
–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의 회복. (출 40:2,17) “너는 정월 초하루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성막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은 분명히 말합니다. (고전 6:19)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 오늘날 성막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자에게는(믿음으로 화평케 하는 자) 상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는(불신으로 자기를 높이는 자) 벌을 주시는 분으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깊은 속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전 3:11)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습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세상 섭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던 욥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의 장엄함에 눈을 뜬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살다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우리에게 무관심하신 것처럼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우리를 절망의 가장자리로 몰아가시는 것 같아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잘 자라던 아들을 달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거둘 수도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늘 모든 게 잘 될 거라며 ‘긍정적 사고방식’ 혹은 ‘적극적 사고방식’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절망의 자리, 낯선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지극히 작은 일에도 충성 할 수 있고 정직할 수 있는가? 또한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신앙은 상식적이어야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문화적 문법에 등을 돌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새해 결단.
◆내 몸과 삶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해,
◆성령이 기뻐 거하시는 성전으로 세워가는 해.
👉 그럴 때 하나님의 음성은 더 분명해집니다.
🔚 결론 정리: 정월 초하루에 하나님께서 하신 세 가지 일입니다.
1. 물이 걷힌 날 – 환난 중에 회복의 시작을 볼 줄 믿습니다.
2. 말씀이 임한 날 – 인생 방향을 여는 음성을 듣는 해로 기억 될 줄 믿습니다.
3. 성막을 세운 날 – 하나님이 거하시는 삶의 회복의 영혼으로 성전을 세우는 해가 될 줄 믿습니다.
🔔 새해 축복 선언
미움과 시기가 걷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막던 죄의 담이 걷히기를 축원합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밝은 빛이 비치기를 축원합니다.
근심과 걱정이 걷히고 웃음이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질병이 걷히고 건강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가난이 걷히고 필요가 채워지기를 축원합니다.
게으름이 걷히고 열심이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홍수를 내리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물을 걷히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 그러므로 새해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해가 환경은 변하지 않아도, 어둠과 혼란과 유혹과 고통과 무시하는 작은 일에도 오직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해, 말씀에 귀 기울이는 해, 성령이 거하시는 삶으로 세워지는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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