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최선 - (빌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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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이라는 충성과 하나님이 우릴 보시는 충성은 과연 같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란 말 즉 충성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빌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모세를 닮고 싶으신가요? 그러면 그의 나이를 생각해 보시고 주님의 뜻을 기대하세요.
● 최선의 행동
어느 공장에 작업반장이 기계 동작을 가르쳐 준 뒤에 새로온 여공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제까지 배웠지만 일을 하다보면 고장 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모든 일을 멈추고 나에게 즉시 와야 한다. 알았나!" 얼마 후에 그 여공이 일을 하다 보니 순간 옷감의 올이 풀인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 올 때문에 천이 잘못 짜지게 됩니다. 일단 기계를 멈추고 당황하여 그 올을 잡으려고 손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올을 풀다보니 이실 저실 서로 얽혀 전부 헝클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시간 이상 땀을 흐리다가 할 수 없이 반장을 찾아갑니다. 반장이 와서 보고 간단하게 고쳐주면서 물었습니다.
"언제부터 잘 못 된 거야?" "한 시간 전인데요." "그런데 왜 이제 왔니?" “제가 고치려고 최선을 다했거든요." 그때 반장은 따끔하게 충고를 합니다.
● "너의 최선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고장 났을 때 즉시 나에게 오는 것이야."
성도들의 최선도 안되는 일을 억지로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전문가인 성령님에게 먼저 묻고 푸는 법과 일을 더 배워 가는 것이 우선입니다.
우리의 최선은 우릴 부르신 주인에게 모든 일을 묻고 따르고 배우고 섬기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걱정하고 행하려하고 월권하는 것은 오히려 최선이 아닌 것입니다.
● 국어사전에 보면 겸손(謙遜)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겸손은 이러한 일반적인 사람과의 관계 수준에서만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까지 연결됩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낮아짐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적인 겸손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며, 이는 철저한 자기부정(自己否定)과 직결됩니다.
성경 말씀처럼 (마 16:24~28)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러한 성경적인 겸손의 최고 모델링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낮고 낮은 이 땅에 죄인된 종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 자체가 이미 최고의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에도 항상 모든 초점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두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늘 모든 일상의 전부였고, 우선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겸손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죽음은 그 자체가 예수님의 자기부인이며, 겸손의 극치란 것을 우리 모두 잘 알 것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겸손의 마음을 모든 성도들이 품어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품는다.’는 것은 인격적이고, 의도적으로 배우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빌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의 형상(창 1:26), 종의 형체(빌 2:7), 사람의 모양(빌 2:8), 그리스도의 형상(갈 4:19)>
이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참된 겸손의 모습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과 다니엘의 경우를 보면, 그들이 각자 살았던 시대와 환경이 다르지만 그들은 애굽의 바로 왕이나 느브갓네살 왕 앞에서 꿈을 해석해 주면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은 숨기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이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이 배워야할 성경적인 겸손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 (창 41:15-16)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 (단 2:26-28) “26 왕이 대답하여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하니 ……. 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고쳐주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솔로몬 행각에 모여들었을 때도 사도 베드로가 외쳤던 말이 성경적인 겸손의 의미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들의 관심을 자신들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 집중 시켰습니다. (행 3:12-13) “1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생애나 요셉과 다니엘과 사도 베드로의 신앙고백적인 말은 이 시대에 끊임없이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유혹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적인 겸손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반대로 교만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데서 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긍정적으로 경청하지 않는 특징을 보입니다. 대화중에도 대부분 자기 말만 합니다. 자기 생각만을 고집합니다. 그러다 보면 쉽게 분쟁과 말다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에 대해 다른 사람 앞에서 아는 척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의 삶은 거의 기도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과의 약속도 무시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철없고 이기적인 아이의 모습을 가지고 살게 되는 특징을 갖게 됩니다. 심지어 교인이면서도 교회를 공격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하나님은 게으르고 교만한 사람은 물리치시고 최선을 다하며 겸손한 사람에겐 은혜와 사랑의 복을 더 누리게 해 주십니다.
● (잠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 (잠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바로 이러한 참된 겸손의 의미와 은혜의 복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 (고전 2장 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 최선을 다하는 일이란? 나의 주인이 원하는 바를 바로 알고 충성될 때 그 최선의 빛은 발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통해 본을 받아 봅니다.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 도다. (요 8: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 그렇다면 오늘 주신 말씀들에 비춰 볼 때, 지금 우리는 나를 드러내고,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 초점이 있는가? 아님,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께 초점이 있는가?
●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내일은 내일을 만드신 이가 주셔야 되는 것이니 결국 내일을 만드시는 이인 하나님께서 걱정하실 것이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뜻이 무엇인지 알라는 것입니다.
* 구약: (잠 20:6)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잠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잠 28:20)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 신약: (마 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고전 4:0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 세상에서 부지런하다고 다 하나님께 충성된 자가 아닌 것입니다. 누구의 말을 따르며 순종하여 최선을 다하는가? 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처럼 또는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만 높이며 살겠다고 작정해야 하겠습니다. 무슨 일에든 좋아하는 일이든, 모르는 일이거나 두려움이 생기는 때가 되면 가차 없이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 최선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 우리들이 사는 이 지역, 나의 모든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환실만 말하는 온도계가 아닌, 믿음으로 온도조절기와 같은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심을 더 깊이 체험하는 최선을 다하시는 선교초대교회 성도들 다되시길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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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다운로드 | DATE : 2022-03-30 19: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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