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천주교가 실수한 것을 또 하나? 다시 생각하자. (마 16장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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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천주교가 실수한 것을 또 하나? 다시 생각하자. (마 16장 13-18)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교회절기로 부활하신 주님이 40일간 이 땅에 계시면서 복음을 전하시는데 그중 내일이 주님께서 영, 육, 혼 모두 부활하시고 완전체로 승천하신 날이며, 그 이후 10일이 될 때에 오순절 날에 마가다락방에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엘리야도 에녹도 산체로 낙원에 거한 인물들이지만? 온전히 죽었다가 살아서 부활의 완전체로 천국인 하늘에 오르신 첫 열매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어느 교회 부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교회에 갔더니 교사들이 “우리 교회에는 술, 담배 하는 애들이 한 명도 없답니다.”라며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부목사님이 이렇게 물어보았답니다. “술, 담배 하는 애들을 모두 쫓아내셨습니까? 아니면 그들을 말씀으로 감화시켜 이제 술, 담배를 안 하게 된 것입니까?” 그러자 교사들이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합니다.
"건강한 교회란 어떤 것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 저는 여러분과 함께 두 가지 측면에서 교회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그 위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입니다.”
1.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을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 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 16장은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과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표적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바로 마 15장에서 떡 일곱 개로 4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셨고, (요 6:9) 보리 떡 5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도 남은 기적을 행하신 이후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누룩들이 바랐던 것이 무엇이냐면 “표적”이었습니다. 표적은 쉽게 아주 거져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것은 일확천금과 같은 요행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이들은 사람에게 높임을 받기 원하는 자들입니다. 기적적으로 빵이 생기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병든 자가 낫고. 기적을 본 사람들은 더 큰 기적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모이는 것을 보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누룩과 같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들이 모이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의도와 중심이 중요합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사람이 늘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고쳐주셨지만, 예수님 사역의 목적이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듭니까? 마치 예수님 당시에 기적을 보고 모였던 사람처럼 교회에서 구하는 것이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는데 교회에 주님이 아닌, 누룩이 만연합니다. 사람을 보러 옵니다. 그러나 참된 교인은 말씀을 듣고 변화되길 원하는 것입니다.
● 이제,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마 16장 14-16절을 보세요.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세례요한이 누구입니까? 당시에 아주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독설을 퍼부으며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는 멋진 사람입니다. 그의 삶도 참 멋집니다. 예수님을 마치 멋지게 삶을 사는 영웅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엘리야가 누구인가요? 구약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하나입니다. 엘리야 하면 “능력”이 생각나는 사람입니다. 갈멜산에서 이방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승리한 사람, 그래서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의 목을 잘랐던 사람입니다. 그는 불의 선지자입니다.
● 예레미야가 누구인가요? 그의 별명은 눈물의 선지자였고,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하면 눈물 흘리며 기도했던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전했던 선지자입니다. 독설, 능력, 눈물...예수!
그렇지요?
지금 이 시대에는 많은 사람이 좋은 교회를 찾아, 좋은 목사님을 찾아다닙니다.
(고전 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 이 물음에 세워진 교회가 “반석”입니다. 이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오늘 본문에 보니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기사와 표적도 교회가 세워지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오직 믿음이 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집니다. 기적도, 표적도 없어지는 때가옵니다.
● 신앙의 고백이 없는 교회는 성령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지는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구약에는 ‘스올’이라 고 하는데, 어둠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 어떤 어둠과 사망의 세력도 베드로의 믿음의 말처럼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수제자로 삼으시고 그를 쓰신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고백 위에 있습니다. 아마도 성경에 나오는 12명의 제자 중의 가장 많은 단점이 있는 사람,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가장 많은 꾸중을 듣고, 실수를 많이 한 사람이 베드로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쓰신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바로 그의 믿음의 고백.
● 교회를 다시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많은 일, 선행, 기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교회를 쓰시는 분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교회가 고백해야 하는 것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이십니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고백 위에서 우리는 “주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분 앞에 늘 겸손해야 합니다. 교회가 행하는 어떤 것도 그분을 앞서지 못하며, 교회가 행하는 그 어떤 것도 그분의 영광을 가로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로 누룩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부활이 없다는 사람의 인본입니다.
● 우리가 구별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육신인 ‘나’를 이 땅에서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세워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즉 영적인 천국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영화를 찍을 때 엑스트라가 있습니다. 감독이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우리를 엑스트라로 사용했기 때문이고, 아무리 주연이 중요해도 우리가 모두가 합쳐져야 영화가 완성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엑스트라라고 해도 그 삶의 인생에서 그 사람은 여전히 주인공입니다.
● ex) 영화 촬영 중에 주인공이 거들먹거리거나, 엑스트라고 주인공을 무시한다면? 얼마나 황당할 가요? 그래서 결심을 하게 되었죠.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세우신 자리에 있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주님께서 베드로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셨을까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고백이 없는 교회는 늘 자신이 주인공 되려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일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2. 교회를 세우신 주인공이 예수님? 날 구원하신 이가 예수님?
“교회론”이 좀 명확해지지 않습니까? 바로 그 고백 위에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십니다. 내가 주인됨은 바로 누룩을 양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누룩 교회가 회개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세운다!” “내가 한다.” 교회를 다시 생각하며 우리가 가장 주목해 보아야 할 말이 있다면, 오늘 말씀의 ‘주어’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단체든 가장 기본이며 반석인 중요한 핵심을 잃으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처럼 본질을 잃는 것입니다.
● 오늘 본문이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의 명령과 말씀 안에 그 교회가 세워지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 어떤 돈과 명예도, 사단의 세력도 교회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희생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주님도 십자가의 죽으심과 희생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시게 됩니다. 내 손의 포기와 내려놓음을 넘어 철저한 자기 부인은 결국 주님을 닮는 즐거운 일인 것입니다. 오늘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교회의 소유권”입니다. 누룩을 양성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일하시고 세워 가시는 주님 앞에서 우리가 반석 위에 서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이십니다.”
* 수많은 교회가 일꾼을 많이 세우고, 많은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책임감이라는 기본적인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몫인 일거리를 목적에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바로 누룩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언제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기적과 표적을 통해 자기를 높이려 하는 자들이 모이는 무리를 보시고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이름을 걸고, 명예를 걸고, 책임감이 높여지는 교회는 참다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은 피로 값을 지불하신 사랑의 실체이신 예수님이셔야만 합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죽은 자, 잠자는 자 누구라도 주님이 부르십니다. 다 같이 역사의 큰 구원의 히스토리의 주인공인 주 안에서 엑스트라처럼 충성되이 헌신하며, 다 같이 참여하고, 다 같이 예배하는 감격이 있는 교회. 그리고 이 교회에서 하나님이 감독과 관객 되셔서 기뻐하시며 일하시는 것을 기대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교회는 주님이 주인 되셔서 세우심을 고백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사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사용하실 교회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참 좋은 교회!” 이 땅의 소망이 되는 교회를 만들어 가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기대감이 이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에서, 음부도 삼키지 못하는 새로운 성전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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