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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켜라 - 느헤미야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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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70회 작성일 21-06-1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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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약속을 지켜야 복을 받는 것이라. 바사(페르시아=이란) 왕 아닥사스다 1세.

성경: 느헤미야 1, 13장.

(느 1: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 13장12장과 약 1년의 기간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느헤미야가 첫 사역임기 12년의 과정을 마치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고 하기 위해 궁궐로 돌아갔었습니다. 궁궐에 약 1년 정도 머물다가 왕에게 허락을 받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 사이 타락된 백성들을 다시 새롭게 개혁해 나가는 것을 기록한 것이 13장입니다.

아닥사스다 왕(BC 465-424):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켰던 그는 느헤미야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를 유대 총독으로 임명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도록 했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스 7:1, 21-26; 느 2:1-8).

● 이스라엘의 총독인 느헤미야가 없는 사이에 철저히 타락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서 영적인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 (느 10:1) 그 인봉한 자는 하가랴의 아들 총독 느헤미야시드기야,” 마지막 때에 지도자를 잘 만나는 것이 큰 복입니다. 예루살렘의 거민들은 느헤미야와 같은 훌륭한 영적인 지도자가 있을 때에는 모든 분야에 규모가 있었으나 잠시 1년 떠난 사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보고는 땅을 칩니다. 예루살렘백성들은 10장 세 가지 약속, 즉 (1) 우상 숭배하는 이방족속과 통혼 금지. (2)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겠다. (3)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겠다. 는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약속을 파기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느 10:29)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 30) 우리의 딸들을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도 딤전 6장 3절이 이하의 말씀처럼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고 하였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의 경건의 교훈”에 한시라도 눈을 떼면, 즉시 악한 생각이 나서 우리 마음이 부패해지고 진리를 잃어버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처음 주를 만나 은혜를 받았을 때 주님 앞에 충성의 결심을 한 적이 있을 것이나, 세상의 파도를 해쳐 나아가면 잠시 한 눈 파는 순간, 그 처음 결심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음이 타락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훌륭한 영적지도자인 느헤미야가 이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바로잡는 모습을 통해 바로 오늘 내 자신이 다시금 새로워졌으면 합니다. 이런 점에서 13장의 말씀은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인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다시 손을 대어 척결한 사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세속주의 추방입니다.

이방민족과 통혼을 금하겠다고 약속한 그들이 암몬모압인들과 더불어 결혼을 하였습니다. 가관인 것은, 과거 성벽건축의 힘든 시기 때 산발랏과 더불어 이스라엘민족에게 큰 고통을 주며 방해를 하던 대적 도비야란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버젓이 들어와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던 배경이 대제사장 엘이아십이 자신의 친척 중에 하나가 산발랏의 딸과 결혼을 했습니다. 산발랏과 혼인관계를 맺은 제사장 엘리아십은 산발랏의 부탁인지는 모르지만 산발랏의 친구인 도비야를 위해 성전에 기거할 수 있는 방 하나를 비워서 내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 내어 준 방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때 쓰는 그릇과 유향과 소제물을 보관하는 거룩한 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것들을 다 드러내고 이방인인 도비야에게 방을 내어 준 것입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이 통탄할 일이 오늘날 교회에서도 벌어집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거룩한 교회에 하나님이 받으실 찬양과 영광과 예배의 자리를 비집고 파고 들어와 버젓이 거주하는 오늘날의 도비야가 바로 세속주의입니다. 세속주의 가치관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입니다. 불신자들의 가치관입니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그것의 정체와 실존을 진단 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세상 사람들 보다 더 나쁜 것은 하나님을 잘 못 믿으면서 이방 백성들의 세상에 속한 방법을 교회로 끌어 들인다는 점입니다. 그 가치관은 주로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① 세상의 전통이나 풍속이 심어준 가치관입니다. 아직도 자녀 결혼 때 궁함을 보는 성도가 있습니까? 좋은날 즉 길일을 중요시 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성도이면서도 아직도 이와 같은 세상의 전통과 풍속에서 온 가치관에 좌우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② 희미하게 남은 양심의 법에 의한 가치관 인본주의입니다. 나름대로의 자신의 도덕률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은 못됩니다.

자기위주의 가치관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을 말하는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무조건 선으로 인정하는 가치관입니다. 즉 자기 본위에 가치관입니다. 자기의 유익에 해가 되면 무조건 틀리고 나쁜 것입니다.

● 이 세가지 중에서 가장 강하게 작용되어지는 세상가치관은 자기위주의 가치관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이기주의 사고방식입니다. 주인은? 자기가 주인입니다. 생의 목적은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많이 두지 않죠. 이혼한 가정의 경우에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과감히 자식도 버리는 무정한 엄마가 얼마나 많은지 얼마 전 T. V에서 한번 버려진 아이들 대상으로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 이와 같은 세상가치관의 반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 가치관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근거로 한 사람의 사고방식은? 하나님 중심의 사고방식입니다.

또한 그런 사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희생합니다.

세상 속에 자기만의 가치관하나님의 자녀의 가치관이 얼마나 다릅니까? 하늘과 땅차이죠.

교회 안에서 돈 많은 사람, 권력 있는 사람, 연줄 있는 사람이 자기를 주장하고, 따지고 힘을 발휘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세상가치관이 들어와 자리 잡고 있는 증거입니다.

거룩한 성전에 절대 들어오지 말아야 할 암몬 사람, 저 대적 도비야가 방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는 것을 안 느헤미야는 13장 8절-9절“8)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09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놓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1) “깊은 근심”을 했습니다. 아! 이 민족이 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구나. 하나님이 얼마나 속상하실까? 저러다가 망하겠구나!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근심이죠. 이처럼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근심은 회개하게 하고, 반드시 구원이 있습니다.

(2) 대적 도비야의 새간을 모두 방밖으로 내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기명과 소제물과 유황을 방으로 들여 채웠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대적 도비야인 세상 가치관을 다 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썩지 아니할 거룩한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또한 성령을 모시고 사는 거룩한 성령의 전입니다. 세상 것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므로 더러운 것들을 다 밖으로 내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갈 2장 20절말씀 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는 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 압니다.

2, 무너진 십일조 생활을 회복시킵니다. (13:10-14)

10-14절의 말씀을 보면, 10장에서 백성들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만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보니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로 인해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사람들에게 사례를 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성전에 봉사하던 사람들이 다 떠나 10절에 보면,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전리”라는 말로도 쓰이는 농사짓는 땅으로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섬길 사람이 없습니다. 텅텅 비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속상했고 민장들을 불러다가 꾸짖고 십일조를 가져다가 다시 곳간에 채우게 하고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을 다시 불러 성전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일이 부지기수로 잃어 나고 있다고 합니다.

도시교회야 십일조를 드리므로 성전 봉사하는 분들이 굶주리는 일이 없지마는, 낙도 오지의 교회들은 실지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가 적을 뿐만 아니라, 교인들도 몇몇 안 되는 곳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런 곳에 사역자들이 평균 사역기간이 3년을 넘지 못합니다.

오래 머물고 싶어도 머물지 못하는 이유는? 살길이 막연할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고린도 교회에 연보를 할 것을 권하면서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8:14)하였습니다. 도시교회에 유여한 물질을 농어촌 미자립 교회의 부족한 부분에 채우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마 10장 10절에 주의 일군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일군들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군들은 당당하게 받아야 하고, 교회는 주의 일군들에게 대접하는 것이 큰 선심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군들이, 그 삯을 받을 권리가 없나요? 있나요?

주님께서는 (마 10:11-15) 아무성이나 촌에 들어가거든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 머물라.(눈치보며 이집저집 옮기지말고 거기서 떠날 때 까지 차려 주는 것 대접하는 것 당당하게 받으라는 것입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 올 것이니라(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안입니다. 일군들이 가서 이것이 임하기를 기도하래요. 그러면 그것을 받을 합당한자가 있으면 그 평안을 내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 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되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하였습니다.

도시에 있든 농어촌에 있든 일군들의 필요를 채워드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3,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회복시킵니다.(15-22)

15-22절까지 안식일을 회복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느헤미야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세 가지 조치를 취합니다.

● 1) 안식일에 일하고 물건을 파는 유대인들을 책망합니다. 15절에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책망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 2) 하나님이 모든 재앙을 이 성읍에 쏟아 부은 것은, 열조가 안식일을 범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이제 너희가 안식을 범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더욱 임하게 된다고 말하며 경고합니다. (18)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 3) 안식일에 장사군들이 못 들어오도록 성문을 닫는 매우 실질적인 조치를 취합니다. (19)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갈 때에 내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나를 따르는 종자 몇을 성문마다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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