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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는 큰 죄. 딤후 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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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35회 작성일 20-08-1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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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는 큰 죄.

교독문: 52.l편 119편. 말씀: 딤후 3:13-17. 찬송가: 204. 주의 말씀 듣고서.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 시간 무지는 큰 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눕니다. 무지해서 안타까운 일들이 생긴 경우를 보면?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베트남의 정글에 뿌린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고엽제의 양은 5만t에 이른다고 합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고엽제를 사용한 것은 전투가 베트콩의 은닉처인 밀림이 우거진 정글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미군은 작전에 장애가 되는 밀림을 파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제초제의 제조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인 다이옥신은 환경호르몬인 오염에 주범인데 청산가리의 1만 배, 비소의 3000배에 이르는 독성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전에 얼마나 해로운 건지도 모른 한국군은 고엽제를 바르면 해충을 방제해주는 효과가 있는 걸로 알고 고엽제를 몸에 뿌리고 발랐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장병들이 그 후유증으로 온갖 질병에 걸려 죽거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무지가 가져다 준 결과입니다. 그래서 무지는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큰 죄인가 하면 성경에는 무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 (눅 23: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잘못을 알지 못하니 깨닫고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몰랐을 때 딤전 1:13에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한 것처럼 알지 못하니까 예수 이름을 박해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구약 호 4: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인생들이 알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왜 무지가 큰 죄일까요?

1. 무지하면 속거나 속이기 때문입니다.

13-14절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했습니다. 알아야 속지 않습니다. 그리고 알아야 속이지도 않습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전하면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속이는 것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한 줄의 글을 읽더라도 진위를 살펴야 합니다.

마귀는 미혹하기 위해서 잘생긴 모습으로 혹은 어여쁜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구약의 에덴에서도 신약의 계시록에 바벨론에서의 음녀도 유혹하는 더러운 자들을 통해 사람들은 넘어집니다.

위대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평소에 교회를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 휘하에 독일이 미쳐 돌아갈 무렵, 국민들은 그들의 말에 다 속아서 잘못된 길로 향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속지 않은 독일 고백교회 지도자들의 기도와 신앙고백과 항거를 지켜보면서 교회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히틀러의 나치 혁명이 한창일 때 자유에의 헌신을 가르치던 대학들이 히틀러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기대하고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대학은 입을 봉하고 말았다. 이제 나는 자유를 지지하는 수많은 논설을 써 온 신문에 기대를 갖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나치 혁명 후 단 몇 주 만에 언론들조차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만이 히틀러의 계획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 이전에 나는 교회에 대하여 어떤 형태라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참된 지성과 진정한 도덕적 자유를 위하여 나치와 맞서 분연히 항거하며 외롭게 싸우고 있는 저 교회에 대하여 나는 엄청난 애정과 감탄을 느낀다. 한때 내가 무시하던 교회에 대하여 이제 나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고백하는 바이다.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다. 나는 교회를 사랑한다.”

그런데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수의 교회가 히틀러를 따라갔다고 합니다. 그들의 눈과 귀는 히틀러의 선전방송에만 열려 있었지 하나님의 음성에는 열려 있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언론은 정권의 시녀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방송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방송 듣고 사업하거나, 방송 듣고 예언하거나, 방송 듣고 말하지 않습니다.

2. 무지하면 어둠 가운데 방황하기 때문입니다.

사 60:2에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이라고 말씀합니다.

암 8:11-13에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했습니다.

바울롬 7장에서 했던 방황은 율법 아래서 복음을 몰랐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 놓으신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예수님의 피와 속죄를 찬양하면서도 그것을 적용할 줄을 몰라 양심의 정죄와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아버지 사랑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롬 5:1에서 성경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고 말씀합니다.

그 뿐 아니라 고후 5:17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새것은 이미 때가 빠진 즉 죄가 빠진 거룩한 존재입니다. 롬 8:30에도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처럼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셨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주 앞에서나 마귀 앞에서나 그 진리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이제 할 일은 그렇게 믿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아들이니까 아들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아들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 그렇게 살아집니다. 늘 찬양하며 행복에 넘치는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복 받았으니까 사랑하고 봉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거룩해졌으니까 그 믿음에 담대히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믿고 행하면 복음의 그 실재를 누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엡 3장까지 교리를 말씀한 바울은 엡 4:1-3에서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러면서 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17절에는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26-28절에서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32절에서는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3. 무지하면 멸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벧후 3:15-16에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여기 무식이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기본이 되어 있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단이 자기 독단적인 생각과 부르심의 소명과 기름 부음 없이 스스로 된 줄 알고 무지로 인해 빚어지거나, 질서 없이 정상적인 신학과정을 밟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많습니다. 자기 기분의 주관대로, 자기 느낌의 생각대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근본이 자기중심적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대의 유익이 아닌 자기의 거짓으로 포장된 사상과 명예와 권위와 권력을 통해서 사악한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고, 성경을 즉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단들도 성경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신격화 그리고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그래서 유 1:4에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구약 시 49:20에도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함께 하던 자들이라도 믿음을 떠난 자들을 들어내서 제자들 가운데 교훈을 삼고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게 합니다.

● (딤전 1:18~20)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를 보면? 참으로 율법주의자들로 인해 박해를 받고 죽은 선지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죽이려 들고 핍박을 합니다.

초기 기독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말하고 잘 못된 것을 수정하려 들면 얼마나 큰 오해가 생겼는지 모릅니다. 또한 로마에 의해 기독교가 얼마나 박해를 받았습니까? 박해의 내용은 100% 오해였습니다. 천국을 전하니 다른 나라를 전한다고 반국가적인 단체라, 왕 되신 예수를 말하니 로마 황제 말고 다른 왕을 따른다고, 성찬식을 하니 사람 고기 먹는 인육식자라, 박해를 피해 모여 예배하니 남녀 불륜의 집단이라, 혹은 네로는 로마를 불질러놓고 기독교인이 한 것이라고 거짓을 꾸며 박해했습니다. 그래서 온 국민의 증오의 대상이 됩니다.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을 전하는 거짓의 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 때까지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라고 변호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순교를 더 즐겨했습니다. 신앙 내에 신학적인 차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 그렇게 침묵만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면서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변증가들이 일어났습니다. 변증가들은 로마 황제에게 변증문서를 만들어 보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에 대한 오해는 불식되고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또 국교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기독교는 타 종교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사회적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악한 세력들이 얼마나 기독교를 모함하고 있습니까? 더 심각한 건 우리가 우리를 비하하는 것입니다. 모르면 그렇게 됩니다. 먼저는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회복하고 다음은 적극 방어하고 홍보해야 합니다.

●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은 미친 음주 문화라고 표현하며 대단하다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 하루 술 먹는 성인 숫자는 598만명(추정치. 질병관리본부) 하루 국내 술 소비량(주류산업협회)은 맥주 952만병, 소주 896만병에 이르며, 매일 성인 6~7명중 한 명은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신다는 예기입니다.

● 벌써 40년 전이된 1980년대의 통계입니다만, 한국의 복지시설 즉 고아원, 양로원, 모자원, 장애인시설, 정신박약아 시설이 당시 455개 인데 그 중의 84%를 교회가 세웠고, 운영하는 기관들이었다고 합니다. 약 20년 전인 2000년대에 한국 교회 전체 예산이 4,400억이라는 발표가 나자 전 매스컴이 한국 교회를 치고, 까고, 혹평했습니다. 그해 술 먹어 없앤 돈이 무려 5배가 넘는 2조 3천억이라고 합니다. 2013년도에는 교회예산이 4조원까지 올랐다고 말합니다. 2019년도와 지금은 술 마셔 없애는 돈이 20조가 넘으리라고 예상합니다.

자신의 육신을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스스로를 타락의 늪에 던지는 유흥의 노리개인 존재로 타락시키는 ‘음녀 바벨론의 음주와 음행의 잔’에 빠지지 않도록,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답게 더욱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고, 교회 중심의 경건생활을 통하여 성화의 진보를 나타내는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인 천국백성인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혼부부가 왜 매일 똑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같이 살까요? 빨리 지겨워 이혼하는 부부는 왜 생길까요? 그 이유는? 내가 원하는 기준으로 서로를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성급함 때문입니다. 서로가 알아 가고 또한 무엇인가? 이루어가며 만들어 가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가정은 늘 새롭습니다. 바로 그렇게 살면서 상대를 알아 가고 그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주께서 “예수님과 하나님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지혜와 지식의 아버지이십니다. 지혜와 지식은 공유적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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