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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의 변화. (눅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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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26회 작성일 20-06-1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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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로 우리가 사는지를 보십니다.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눅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성격의 변화

(눅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1. 성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전에는 각 사람의 특유한 성질이라고 했습니다. 한자로 보면 성격(性格)의 성 자가 성품 성, 마음 성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격을 성품이나 마음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성격이 원만치 못하여 대인관계가 어렵고 힘들어 자신도 상처 받고 타인도 마음의 상처를 받게 합니다. 성격은 천성이니 고칠 수 없고, 그러니 성격대로 살겠다고 합니다.

좋은 성격이라면 성격대로 사는 것이 좋으나 나쁜 성격인데 고칠 수 없으니 성격대로 사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남편이 아내에게 과격한 성격 그대로 언어폭력을 마구 쏟아냅니다. 그리고 하는 말, “내 성격 몰라? 내 성격 알면서 내가 과격해지려고 하면 자리를 피해야지 왜 그대로 앉아 대들어? 대드니까 내 성격에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때쯤 아내의 마음에는 피멍울이 들어 쓰리고 괴로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부부관계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나쁜 성격은 타고난 성격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기 때 또는 조금 더 커서 뛰어놀 때 마음이 착했는데 자라면서 성격이 변한 사람이 많습니다. 또한 결혼 전에는 착하고 순진하던 여자가 결혼하여 수년 간 고생고생하며 살다보니 성격이 거칠어지고 과격해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쁜 성격을 타고난 성격이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2. 또한 성격은 천성이라고 합니다.

천성을 기독교 신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주셨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격은 좋은 성격이지 나쁜 성격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쁜 성격이 없으십니다. 어머니를 닮았든지 아버지를 닮았든지 나쁜 성격의 근원은 마귀입니다. 그래서 화난 얼굴은 마귀 얼굴과 같다, 마귀를 보려면 화난 얼굴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과격하게 되었든지 온유하고 겸손하며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변화시키면 됩니다. 세상에서는 성격은 천성인지라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하지만 성경에는 성격을 고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고쳐주십니다.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과격한 성격도 포함되는 말씀입니다. 과격한 성격도 믿음 안에서는 능히 고칠 수 있습니다. 눅 6: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4절에는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하셨습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은 입에서 제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화가 입에서 마구 튀어나오는 것은 마음에 쌓아놓은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쌓아놓은 화가 없으면 과격한 성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격이 왜 그래, 나잇값도 못하니, 공부도 많이 한 사람이 성격이 왜 그러니, 속상하다고 말해 봐도 소용없습니다. 금력이나 재력이나 명예 그 어떤 것도 성격 변화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수양으로도 해결이 안 됩니다.

마음속에 쌓여 있는 화를 없애기 전에는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없애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랑의 은사를 받으면 됩니다. 은사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은사 중에 제일인 사랑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인데 사랑은사를 받으려고 힘쓰지 않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격변화는 대다수 기독교인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사랑 은사를 받아 마음에 들어오면 냇가에 맑은 물이 들어가면 흐린 물이 흘러가듯 과격한 성격은 몸 밖으로 밀려나가는 것입니다. 사랑이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랑 외에 그 어떤 방법이나 수단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부부가 말다툼 하다가 한편에서 화를 내면 “이제 본색이 드러나는 구나”라고 합니다. 화내는 성격, 본색이 드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풀리지 않은 화가 마음에 쌓여있기 때문에 본색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은사를 받아 성격이 변화된 사람은 참는 데 한계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부부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누구하고도 다투거나 큰소리치지 않고 갈등 없이 평화스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성령님의 충만으로 인해 많은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로 이웃에게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말씀이 삶으로 육신되는 이런 나라가 되는 것이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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